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24. 2020

모든 길이 다 로마로 통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 상황, 2020년 3월 23일 18시 11분 현재

이탈리아를 탈출할 수 있을까..?!!

Coronavirus in Italia: 

63,927(+4,789) casi, 

6,077(+601) morti 

-Il bollettino al 23 marzo.



-2020년 3월 23일 월요일 오후 6시 11분(현지시각) 현재,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는 63,927명 (+4,789명)으로 늘어났으며, 사망자 수는 6,077(+601명)으로 집계됐다. 위 도표는 이탈리아 20개 주의 꼬로나비루스 현황표(오후 5시 현재)이다. (출처: www.open.online) 비루스로 인한 떼죽음이 일상이 된 공포의 나라로부터 언제쯤 멀어질 수 있을까..


아래는 어제(Il bollettino al 22 marzo.)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Coronavirus in Italia: 

59,138(+5,569) casi, 

5,476(+651) morti 



모든 길이 다 로마로 통하지 않았다



*우체국 앞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바를레타 시민들


오늘 아침(현지시각), 우리는 이틀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실행에 옮겼다. 아내가 이탈리아에 돌아온 후부터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의 꼬로나비루스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게 이유가 됐다. 관련 내용을 이탈리아의 꼬로나비루스 속보로 나의 브런치에 게재하게 된 것도 수상한 낌새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확산일로에 있었던 꼬로나비루스 사태는 마침내 아내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다. 


나는 매일 오후 5시 이후에 발표되는 꼬로나비루스 상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이 꼬로나비루스로부터 황칠을 당하며 세계인들로부터 미개한 국가처럼 보였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부터, 세계인들에게 비루스 묻은 한국의 위상(?)을 마음껏 알린 것이다. 


*보건당국의 이동제한 조치로 유령의 도시로 변한 바를레타 역전의 분수대도 멈춘 을씨년스러운 풍경


처음엔 그 같은 상황이 믿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슨 이유 때문이었던지 언론이 침소봉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생전 처음 만난 꼬로나비루스의 정체는 그렇게 이상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불과 두 주만에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아마도 유럽이나 미국 등의 나라들도 나와 같은 시선으로 꼬로나비루스에 대해 눈꼴사나운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맨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에 신종 꼬로나비루스(COVID-19)가 창궐하고 사망자를 하나둘씩 보태기 시작했다. 아내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 지 대략 열흘만에 우리는 아침운동을 겸한 산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3월 10일 전후부터였다. 이탈리아의 꼬로나비루스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제한령으로 바를레타-로마로 가는 기차편은 물론 모든 기차가 발이 묵였다. 창구는 문이 닫혔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는 이미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루스 사태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마침내 중국과 한국을 추월하며 세계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것이다. 흑사병이 창궐한 이래 또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가장 참혹한 죽음의 그림자가 이탈리아 북부로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를레타 역전의 지하도가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연출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비정상..


아내와 나는 이 끔찍한 사태를 매일 오후 노트북을 펼쳐, 이탈리아 보건 당국이 발표하는 수를 마주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내는 그때마다 "왜 하필이면 이때에 이탈리아로 되돌아왔을까"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때쯤 한국은 정부와 보건 당국의 노력 등에 힘 입어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 아내는 보건 당국의 노력을 비웃는 일부 종교단체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나 또한 처음으로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미친넘들이거나 "예수를 팔아 연명하는 XXX들"이라 했다. 아내와 내가 이런 자세를 보인 건 이탈리아인들의 비루스 사태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바를레타 기차역은 텅빈채 버려진 듯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붐비고 기적이 울렸는데..


매일 수 백 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정부와 보건 당국의 행정명령과 지시를 철저하게 잘 따르고 있었다. 사태 초기에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그런 건 당연해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략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 경험이 전무했던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부의 작은 도시 바를레타까지 어느 날 갑자기 유령의 도시로 변하면서 인적이 뚝 끊긴 것이다. 베란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 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당연시했으며,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아내의 눈에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인 건 당연했다. 아내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지 불과 한 달만에 세상이 눈에 띄게 확 달라진 것이다. 


*비나리오로 이어지는 계단 밑에서 올려다 본 낯선 풍경..


이때부터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교민들도 서서히 탈 이탈리아를 꿈꾸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를 탈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교민들은 재 이탈리아 교민회를 축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나라들이 하늘문을 꼭꼭 잠그고 있는 마당에 특별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는 대략 500명이 넘었고 밀라노와 로마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던 교민들이었다. 주로 학생들이 많았다. 교민들의 이 같은 바람은 우리 대사관과 영사관에 전달됐고, 지난 주말 대사관은 특별 전세기를 이용할 교민들을 계수하기 위해 실수요자 조사 공지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교민들의 자세한 인적사항 등을 메일로 전달해 전세기를 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것. 


*아내가 저만치 앞서 걷고 있으나 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우리는 언제쯤 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아내의 이탈리아 탈출 가능할까..?!!


아내는 이 같은 조치가 나오자마자 함께 고민한 끝에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한국행 특별기에 몸을 싣고자 했던 것이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지 만 한 달째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보건 당국이 오늘 자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발표한 시간(오후 5시경)에 회신을 보내왔다. 대사관의 회신 내용은 이랬다.


(중요) 전세기 운임 등 공지 및 최종 실수요 제출 요청


"주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consul-it@mofa.go.kr>

메일 제목 : (중요) 전세기 운임 등 공지 및 최종 실수요 제출 요청 

o 전세기 편도 운임
  - 성인 : 200만 원
  - 소아(만 2세 이상~만 12세 미만) : 150만 원(성인 운임의 75%)
  - 동반유아(만 24개월 미만) : 20만 원(성인 운임의 10%) 
o 운항 일정 및 노선(가안)
  - 일정 : 3.31(화) ~ 4.1(수) 경 (추후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노선 : 최종 실수요 규모 및 항공사 측 사정 등에 따라, 로마-인천 또는 로마-밀라노-인천 노선 중 결정 
o 국내 입국 후 코로나 19 검사 및 격리 등 절차 (동의서 제출 필요)
  - 국내 도착 직후 탑승객 전원 코로나 19 검사 실시
  - 검사 결과 탑승객 중 1명이라도 양성 확진 판정을 받으면 탑승객 전원 14일간 임시 생활시설 체류
    * 확진자가 없는 경우 14일간 자가격리 실시 
o 최종 실수요 제출 안내
  - 본 이메일에 대한 답신으로 3.23(월) 18:00까지 최종 실수요(탑승의사)를 제출해 주시기 바라며, 가급적 가족(일행) 대표자가 일행 전원의 탑승의사를 한 번에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또한, 이때 항공기 탑승 관련 특이사항(보행불편, 유아 시트 사용 등)이 있을 경우 함께 제출해 주십시오.
  - 접수를 철회하실 분께서도 철회 의사를 이메일 답장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빠른 시일 내 전세기 노선 확정 및 운항 관련 제반 준비를 위해 부득이 최종 수요 제출 시한이 짧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o 자주 묻는 질문(FAQ)
  - 반려동물 탑승 가능 여부 : 기내 반입 어려움
  - 수하물 허용 개수 : 정기 편과 동일(위탁수하물 23kg 1개, 기내 12kg 1개)
  - 유아 시트 여부 : 유아 바구니 사용 가능하나 개수는 한정적
  - 마일리지 적립 여부 : 전세기 편은 적립 불가 
주이탈리아 대사관
Via Barnaba Oriani 30, 00197 Roma


*이탈리아를 잠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연분홍 봄꽃들이 아내의 발목을 붙든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오후 8시경, 현지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누굴까.. 전화를 받고 보니 공교롭게도 우리 대사관의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세기 수요조사를 위한 내용이었다. 통화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의 교민들은 전세기를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통화내용과 오늘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니 아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내가 한국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이유


오늘 아침 우리는 시내에 볼 일도 볼 겸 겸사겸사로 바를레타 역으로 이동하여 로마로 가는 기차 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바를레타에 남고 아내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에서부터 바를레타 역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문 한편 곳곳에 경찰과 단속 요원들이 이동제한 조치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내의 등 뒤로 3월이 자지러진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꾸나..!


기차역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단속 요원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외출 목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기차 시간을 물어보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기차역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를 언제 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더 확약해 놓고 싶었다. 



대사관에서 실수요자 조사가 진행되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까지 아내를 데려갈 수 있는 조치를 해 놓아야 했던 것. 그런데 역사로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발을 옮겼다. 역사에 사람들 몇이 서성대는 것 외에 표를 파는 창구는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이다. 창구 곁의 따바끼(Tabachi)에 한 번 더 확인해 보니 "바를레타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노선은 없다"라고 말했다. 


*잔인한 3월은 집 근처까지 진출했으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인기척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탈리아 전역에 내려진 이동 제한령이 결국 아내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너무 허전했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잠시 외출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맨 처음 집에서 바를레타 역으로 가던 길을 우회하여 천천히 걸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지난해 가을 나 혼자 걸었던 올리브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아내에게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며, 나 또한 아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서운함이 가득했다. 


기차역 아래 지하도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연분홍 봄꽃들은 난리가 아니었다. 도시는 인적이 뚝 끊기었지만, 빌어먹을 비루스는 봄소식마저 잠을 재우지는 못했다. 그 언제인가 아내의 가슴에 연분홍빛 희망이 오롯이 돋아나길 바라며 글을 맺어야겠다. 모든 길이 다 로마로 통하는 건 아니었다.


Tutte le strade non conducevano a Roma
il 23 Marz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슬프지만..힘내라 이탈리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