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멜로디 전혀 다른 느낌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왜 좋아하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정확히 피렌체의 중심이다. 집을 나서서 두오모까지 걸으면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고, 메디치가의 예배당이 있는 산 로렌조 성당까지는 2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피렌체는 역사상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또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건물을 장식한 붉은 기와와 저녁노을이 아르노강과 너무 잘 어우러져 언제 봐도 현대의 느낌은 찾아볼 수가 없는 곳. 1982년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만약 이 도시가 그대로 방치(그럴 리가 없지만)되었다면 수많은 건축물들이 개조되거나 허물어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도시가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다 보니 현대인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할 때가 적지 않다. 예건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건물은 냉난방 시설이 뒤떨어져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붉은 벽돌로 촘촘히 잘 쌓아 올리고 굵직한 서까래와 처마 도리로 마무리된 건축물에 아쉽게도 단열재가 빠진 것이다.(물론 장단점이 있다)
또 이탈리아의 샤워시설은 물을 흔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한국인들에 비해 턱없이 비좁고 불편하다.(경제적일까)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런 시설을 탓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인이나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아닌 여행자들은 불편을 느낄 새도 없이 다른 도시로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또 내가 만난 이탈리아인들 그 누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들의 심성은 타인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물론 어느 때고 떠 벌 떠 벌 손짓을 섞어가며 언어를 즐기는 습관은 여전하다. 아울러 그들 스스로 잘못하는 게 있고 있었다고 판단되면 솔직히 시인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정되는 일은 흔치 않고 그들은 소신껏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겪어본 이탈리아인들은 솔직했다. 그래서 기다란 서문을 끝으로 솔직했던 이탈리아 예술인 루치오 달라를 살짝 소개해 드린다. 그는 우리 귀에 낯익은 싱어송라이터이자 2012년에 작고한 분이다. 내가 좋아하고 좋아했던 노랫말은 이러하다.
4/3/1943
Lucio Dalla, Francesco De Gregori
Dice che era un bell'uomo e veniva
Veniva dal mare
Parlava un'altra lingua
Però sapeva amare
E quel giorno lui prese a mia madre
Sopra un bel prato
L'ora più dolce prima d'essere ammazzato
Così lei restò sola nella stanza
La stanza sul porto
Con l'unico vestito ogni giorno più corto
E benché non sapesse il nome
E neppure il paese
M'aspettò come un dono d'amore fino dal primo mese
Compiva sedici anni quel giorno la mia mamma
Le strofe di taverna
Le cantò a ninna nanna
E stringendomi al petto che sapeva
Sapeva di mare
Giocava a far la donna con il bimbo da fasciare
E forse fu per gioco o forse per amore
Che mi volle chiamare come nostro Signore
Della sua breve vita è il ricord, il ricordo più grosso
È tutto in questo nome
Che io mi porto addosso
E ancora adesso che gioco a carte
E bevo vino
Per la gente del porto mi chiamo Gesù bambino
E ancora adesso che gioco a carte
E bevo vino
Per la gente del porto mi chiamo Gesù bambino
E ancora adesso che gioco a carte
E bevo vino
Per la gente del porto mi chiamo Gesù Bambino
Compositori: Lucio Dalla / Paola Pallottino
루치오 달라의 이 노래(칸소네)를 듣고 있노라면 멜로디 만으로 이 곡의 배경이 어떨 것이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국에서는 가수 이용복이 '1943년 3월 4일생'이란 번안곡으로 불러 히트를 치기도 한 노래였다.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특히 최근에) 이 노랫말의 본래 뜻을 알고 나니 더더욱 좋아지는 게 아닌가. 이랬지..
루치오 달라는 삽입된 영상의 표지에 등장하는 장소에서 아버지도 모른 채 태어났던 것이다. 노랫말을 통해 짐작 건데 그의 아버지는 지중해 근처의 먼 나라에서 온 뱃사람으로 잘 생겼고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엄마를 어느 풀숲에 뉘어놓고 죽지 않을 만큼 격렬하고 달콤한 사랑을 했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는 루치오 달라가 태어날지도 모른 채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간 것. 그것도 모르는 루치오의 엄마는 그를 낳고 난 후 사랑의 선물로 여기며 한 달 내내 그 남자를 기다렸단다. 그때 그의 엄마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고 선술집의 음악가들은 엄마를 달래주는 노래를 불렀단다. 그의 엄마는 선술집 작부였을까.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노바라의 이맘때 풍경으로 요리 유학 짬짬이 기록해 둔 것.
그녀는 혼자 버려진 아들과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며 처음으로 어머니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루치오를 '아기 예수'로 부르고 싶어 할 만큼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꽤 흐른 후 루치오는 바닷가 항구도시 사람들로부터 아기 예수로 불렸다. 루치오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긴 채 그의 운명을 노래했고, 그 노래는 1971년 제21회 산레모 가요제(Festival di Sanremo)에서 3위로 입상하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우리가 이탈리아로 오게 된 결정적인 배경에는 이탈리아 요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피렌체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한 것 외에도, 도무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지닌 역사적 문화적 사실이 한몫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음모와 술수의 인간 세상에서 거짓은 소멸하고 사실과 진실이 영원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 보이는 빛의 도시. 그 나라에서 자기 혼을 불사른 한 예술가의 생애를 통해 나는 혹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떤 노래를 불러야 영원의 길에 접어들 수 있는지 집작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