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3. 2019

같은 장소 전혀 다른 느낌

-이탈리아 야금야금 맛보기_2

진귀하고 맛있는 요리나 와인은 어떻게 먹거나 마셔야 할까..?


피렌체에서 가끔 그립거나 생각이 나는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있다. 나는 육류보다 생선을 더 선호하는 까닭에 생선이 곁에 없을 때 어묵을 대신하곤 했다. 기름진 어묵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겨자소스에 찍어먹는 것. 그렇게 먹으면 어묵을 튀길 때 발생한 여러 잡내음은 물론 불필요한 튀김기름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코 끝을 톡 쏘거나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겨자소스는 생선살의 맛을 살짝 배가시키는 것. 


이때 필요한 게 뭔 줄 아시나. 술이다. 그냥 술이 아니라 소주 한 잔(대포 라야 한다 ^^) 아니면 막걸리가 적격이다. 막걸리를 종이컵 등 작은 용기에 여러 번 나누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 큼지막한 사발에 한 통을 다 부어놓고 숨이 목구멍까지 찰 때까지 단숨에 들이키는 것. 이때 조건이 따른다. 매우 출출해야 한다.  


*박태기나무꽃(Cercis chinensis)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피렌체의 저녁노을 명소로 뷔아 디 벨베데레의(Via di belbedere) 실루엣이다.


이런 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무엇을 먹고 마시나 거의 같은 행위를 되풀이한다. 나처럼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귀족은 다를까. 귀족도 귀족 나름이겠지..) 고급 양주는 물론 포도주 등을 앞에 놓으면 거의 벼락치기로 후다닥 순식간에 마셔버리기 일쑤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아마도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하면서 유체이탈의 황홀한 경지(?)를 맛보게 될 것. 이런 현상을 안다는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 아닌가. 맞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꽤 여러 번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등장한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일 것.



유체이탈의 경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진귀하고 맛있는 요리나 와인을 대할 땐 마음가짐부터 다른 것이다. 음식이나 와인도 정체성을 지닌 한 개체로 인식하는 것. 그러니까 요리 접시나 와인 잔을 대할 땐 매우 조심스럽다.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니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 


셰프(Chef)가 통치(?)하는 요리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되고, 특히 와인은 교육을 충분히 받은 전문 소믈리에(Sommelier)만이 그 세계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요리 세계든 와인 세계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발을 뗄 수 없을 정도인 것. 음식재료를 선정하고 작품으로 탄생시킬 때까지 과정이나 와인의 탄생과 숙성과정 등을 알게 되면,  절대로.. 절대로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존경을 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태기 꽃술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그 유명한 일 뽄떼 베끼오(il Ponte Vecchio)의 아름다운 전경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내용을 끼적거리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분들은 화려한 박태기꽃이 만발한 장면을 대했을 것.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불리는 이곳은 세계인들이 피렌체를 방문하는 날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르는 관광 명소이다. 이 광장을 방문하면 르네상스의 고도가 빤히 내려다 보일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일 뽄떼 베끼오(il Ponte Vecchio)가 저녁노을을 더욱 환상적으로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광객들 혹은 연인들은 필자가 사진을 촬영한 장소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계단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일몰을 기다리는 것이다. 굳이 거리를 계산하면 대략 20m 정도나 떨어졌을까. 사람들은 이곳에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전망 좋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태양이 포르떼 벨베데레(Forte Belvedere너머로 떨어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 



만약 사람들이 일몰 전까지 발품을 조금만 더 판다면 1년에 단 한차례 밖에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행복해할 것 아닌가. 비록 벌건 대낮에 촬영된 풍경이긴 하지만 이 장소는 한 두 달 후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꽃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새파란 잎사귀를 큼직하게 펼치기라도 한다면 화려하게 수놓은 봄꽃 너머의 장관은 당분간 보지 못하거나 제한을 받게 될 게 틀림없다. 




주지하다시피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는 그 어떤 진귀한 요리보다 그 어떤 명품 와인보다 세계인들이 아끼는 곳 아닌가. 피렌체는 지난 1966년에 대홍수를 겪었는데 이때 많은 예술품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때 시민들은 물론 피렌체를 아끼는 세계인들은 작품들을 복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바 있고, 오늘날 세계인이 선망하는 명소로 자리 잡는데 일조한 바 있다


*박태기 꽃술 사이로 보이는 전경은 장미정원(il Giardino delle rose)으로 이름 붙여진 피렌체의 명소이다.


보통, 사람들이 세계 어디든 여행을 떠나면 한 번 방문한 곳을 다시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처음 느꼈던 감동이 현저히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힘들게 처음 방문한 이 도시에서 가만히 앉아서 일몰을 기다리는 대신, 연인들 혹은 가족과 함께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행복은 배가 될게 분명하다.  같은 장소를 방문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감동에 빠져 허우적이게 될 것.. 


몇 해 전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몇 분에게 내가 좋아하는 길(Via di belbedere)을 가르쳐 주었더니, 너무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회피하거나 잘 모르는 명소. 언제인가 피렌체를 방문하시면 꼭 한 번 들러보시라.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모름지기 좋은 음식은 후다닥 해치울 게 아니라, 야금야금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싶다는 거..!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너무 좋아했던 노랫말의 실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