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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8. 2019

어느 봄날의 단상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우리들의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오늘(7일 일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피렌체의 숨겨진 명소 빠르꼬 디 빌라 일 벤 딸리오(사진_Parco di Villa il Ventaglio)를 다녀왔다. 이곳은 피렌체와 피에솔레의 경계 지역의 나지막한 산(언덕) 한쪽을 차지한 공원으로, 15세기에 지어진 대저택이 언덕 꼭대기에 있다. 


대저택의 큼직한 정문을 들어서면 안내소를 지나 널찍한 공원이 펼쳐지는데 잘 가꾸어진 공원 곳곳에는 박태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또 한쪽 모퉁이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자라들이 봄볕을 머리에 이고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뭇새들이 조잘대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마치 천국을 연상하게 하는 곳. 



빌라 꼭대기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중턱에 이르면 피렌체 시내가 잘 조망되고 가깝게 두오모의 쿠폴라(Cupola del Brunelleschi)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은 큼직한 빌라 대부분이 텅 빈 것으로 확인되지만, 한 때 이곳은 피렌체의 유명 인사가 살았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 우리는 공원 입구에 펼쳐진 광경 앞에서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휴일 아침을 만끽했다. 만끽했었다. 


그리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에 재밌는 광경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빈 의자 때문이었다. 아침나절 이곳에는 몇몇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었지만 한순간 빈 의자로 남아있는 것. 사람들은 박태기나무 아래서 장의자를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점심을 먹을 겸 우리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랬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에 바람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신세대가 아니라면(신세대도 좋아하시나요? ^^) 누구나 한 번쯤은 불러봤을 법한 이 노랫말 만남의 가사는 가수 노사연이 불러 히트한 노래로 만남과 이별의 애틋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소월의 시 '진달래'를 현대 버전으로 바꾼 듯 노사연 씨의 감성에 실린 이 노래는 가끔 노래방에 들를 때마다 나의 애창곡이 되곤 했다. 첫 소절이 너무 좋았을까. 가사를 살짝 바꿔보니 이별의 애끊는 속 마음이 엿 보이는 듯..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생각했지. 그래서 운명이 너무 야속해. 누가 알랴. 그 운명을 부여잡고 얼마나 흐느꼈는지. 만남 속에 이별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거야.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었지. 운명이 야속해.. 하지만 죽도록 사랑했어. 또 죽는 순간까지..!





봄날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누가 말리랴.. 사람들이 만남과 이별을 노래하거나 말거나 계절은 어김없이 제 시각에 맞추어 등장하며 약속이나 한 듯 화려한 꽃만 내놓고 사라지는 것. 박태기꽃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곧 떠나야 할 운명 앞에서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었는지, 선홍색 핏빛으로 빠르꼬 디 빌라 일 벤 딸리오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벌건 대낮에 여우비가 오락가락하여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장의자 하나를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도 잠시 우리는 공원을 나섰다. 세상은 그런 거였지.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게 되고, 그 운명은 당신의 선택 여하에 따라 필연과 악연 혹은 우연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것. 소월의 시가 새삼스럽게 가슴에 다가온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소월 진달래꽃



우리도 별 수 있으랴..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동안 피렌체의 어느 공원에서 빌려 쓴 장의자는 곧 비우게 될 것. 그나저나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 아내가 차지한 저곳은 누가 봐도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둔 운명의 단편이 아닐까.. 우연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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