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놓치는 너무 아까운 장면들
우리는 어떤 작품 앞에서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둥지를 튼 직후 아내와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 최소한 두 차례 이상씩 마실을 다녔다. 어떤 때는 세 차례도 성에 차지 않았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수많은 이야기보따리를 지닌 이 고도는 지천에 널린 게 볼거리며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 우리는 마치 삼시 새끼를 날마다 거른 걸인처럼 허겁지겁 눈 앞에 있는 명소를 집어삼키고 다녔던 것이다.
어떤 때는 시내 중심으로 또 어떤 때는 변두리를 찾아 발도장을 찍는 것이다. 예건데 피렌체 중심이 미켈란젤로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면, 변두리에서 조망되는 피렌체는 중세의 모습을 박제해 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작품 다비드(David_Michelangelo) 앞에 서면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바이블이 모티브가 된 이 작품은 대리석을 소재로 1501년부터 1504년까지 3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현재 진품은 갤러리아 델라 아카데미아(Galleria dell'Accademia)에 소장되어 있다. 또 복제품은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한쪽에 위치한 빨라쪼 베끼오(Palazzo vecchio) 궁 앞에서 1년 내내 관광객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고(?) 있는 것. 이 작품을 만난 이후 피렌체를 미켈란젤로의 도시로 부를 만큼 큰 감동을 준 작품이다.
갤러리아 델라 아카데미에서 본 작품이나 복제된 작품 모두, 어떤 게 진품인지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인체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처음 느낄 정도였다면 믿기시는가. 남자 사람이 봐도 섹시함을 느낄 정도이므로 여자 사람들이 봤을 때는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이 든 것.(곁에서 지켜보면 여자 사람 관광객들이 사진을 더 많이 찍으며 좋아하더라..^^)
FIRENZE_4월의 노래 LA PRIMAVERA DEL FIUME ARNO CON MIA MOGLIE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끼니를 걸러가며 미친 듯 구경 삼매경에 빠졌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미켈란젤로의 도시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표시도 안 날 정도로 장소를 옮겨가며, 어느덧 피렌체를 휘감고 흐르는 아르노 강 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먼저 사흘 전 그곳을 다녀오며 남긴 영상(위)을 참조하자.
영상을 열어 봐도 큰 감동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미켈란젤로의 도시를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렇듯 평범한 풍경을 보기 위해 귀한 시간과 비용 등을 투자한 건 아닐 것. 그러나 이곳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장소가 됐다. 피렌체 시내를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1년에 단 한차례 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 이곳에서 우리를 불러 세우는 것이다.
1년에 한 차례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란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장면들 속에는 어떤 이에게는 귀중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하찮은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깨달은 바에 의하면 한 장면 한 장면이 금쪽 이상으로 귀한 것. 어릴 때에는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던 것들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가슴에 대못처럼 박히며 찡한 여운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지 않아도 한 갑자를 사노라면 봄은 60차례를 예비하고 있고, 불혹을 갓 넘긴 분들이라면 평균 수명에 비례한 봄날의 수를 헤아리게 될 것. 10년, 15년, 30년 혹은 더 많은 횟수를 예비한(?) 수명이라 할지라도 그와 비슷한 봄날의 수가 당신을 기다릴게 아닌가. 따라서 어느 날 그냥 지나치던 봄날의 풍경은 세상의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아내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이맘때가 너무 좋아.. 연둣빛이 꼬물꼬물 나무를 물들일 때.."
꽤 긴 시간 동안 세계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바 진정한 비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모르는 바 아니다. 필자가 너무 좋아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땅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천국이 어떤 곳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감흥을 주는 건 아니다. 그저 겉모습을 바라보면 쉽게 감동할 수 없는 것. 모름지기 인간관계든 대자연이든 겉모습만 대략 훑어봐선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소낙비에 흠뻑 젖어봐야 낭만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것. 무엇이든 천천히 겪어 보면서 충분히 느껴봐야 제 맛을 알게 될 게 아닌가. 그래서 그럴까.. 무심코 그냥 지나치는 일상 속에는 무궁무진한 볼거리가 카메라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을 거는 것. 따라서 사진을 찍는 취미 속에는 우리가 미쳐 소통하지 못한 사물 혹은 피사체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한 것이다.
피렌체 중심을 벗어나 아르노 강 가에 다다르면 아무도 몰래(?) 자기들끼리만 피어났다 지는 꽃들이 지천에 널렸다. 녀석들을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연둣빛에 적당히 물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해 보면 각 개체들은 닮은 듯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바이블에 따르면 창조주는 세상 모든 것을 만든 후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남자 사람을 먼저 만들고 또 여자 사람을 만들었지.. 그리고 종국에는 그가 만든 낙원이라는 곳에서 구실을 붙여 좇아 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창조주는 남자 사람 아담을 통해 당신이 만든 지구별을 잘 관리하고 충분히 즐기라고 했을 텐데.. 웬걸 여자 사람한테만 푹 빠져 지내면서 대자연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파괴를 일삼았던 게 아닌가. 조물주면 어떻고 창조주면 어떤가. 우리가 섬기는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를 통해 외눈박이의 삶만 면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게 변신을 거듭할까.
미켈란젤로의 눈에 비친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가 무심한 대리석을 앞에 두고 죽는 순간까지 두드린 망치질은 천지창조에 비견되는 실로 놀라운 것으로, 인간이 신의 대리인 임을 확신하게 만들만한 놀라운 대사건이었다. 오죽하면 세계인들이 미켈란젤로의 도시에 열광하겠는가. 하지만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 혹은 기록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주제로 등장할 망정 대자연을 능가하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대자연은 둔탁한 망치질과 섬세한 끌질로도 다듬어지지 않는, 오묘한 섭리를 지닌 창조주의 위대한 작품들. 그 작품들이 미켈란젤로의 도시 한쪽 아르노 강 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4월 어느 날.. 다비드의 섹시함 이상의 아름다움을, 그냥 스쳐 지나던 일상의 풍경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남긴 노래 '예술가의 십계명' 중 열 번째가 귓전을 맴돈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