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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5. 2019

양귀비꽃과 기찻길

-첫눈에 화들짝 반해버린 아스라한 풍경

세상에.. 이런 기찻길도 있다니..!


참 조용했던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 그곳은 내 생애 일대 전환점을 이룬 곳이다. 보기 좋게 포장하면 나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랄까.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주 파르마의 작은 마을 꼴로르노였다.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곳에 아름다운 궁전 렛지아 디 꼴로르노가 위치해 있고, 글쓴이가 몸 담았던 요리학교가 궁전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그곳에서 이탈리아 요리 혹은 음식을 맛보거나 요리문화 등을 엿보며 낯선 나라를 조금씩 이해해 나가게 됐다. 


사는 동안 이런 선택이 없었더라면 매우 따분한 일상을 접하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래의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헤게모니를 놓고 티격태격 다투다가, 해가 서쪽으로 저만치 멀어지면 소주잔에 의지하며 다음날 헤게모니를 떠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 잠시 새롭게 살아보는 것. 인생은 일면 다 똑같은 것 같아도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꼴로르노의 일상은 바쁘고 단조로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한 눈 팔 시간조차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면 그날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는 한편 다음날 과제를 예습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이탈리아는 빛 좋은 개살구였을 뿐이다, 


숙소에서 학교까지 이동하는 거리는 불과 10분이면 도착하는 지근거리에 있으므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이탈리아는 꼴로르노 주변이 고작이었던 것. 사정이 이러하므로 주말만 되면 바빠진다. 모처럼 1박 2일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한 달만에 처음으로 외출에 나섰다. 그동안 꼴로르노 근교의 농촌 풍경을 살피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빠르마(Parma)로 나가보기로 했던 것. 나도 모를 일이었다. 전혀 그럴 나이도 아니었건만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가슴이 설렜다. 설렘 가득했었다. 숙소에서 파르마로 가려면 먼저 꼴로르노 기차역으로 걸어가거나 아니면 숙소 바로 앞에서 빠르마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 발품을 파는 번거로움이 있는 반면 꼴로르노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이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버스의 배차 시간 때문에 무조건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것. 내겐 전자의 경우가 흡족했다. 5월 초, 딱 이맘때 꼴로르노 기차역까지 가는 길 옆에는 아카시 꽃이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며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또 렛지아 디 꼴로르노 담장을 따라 걷다가 곳곳에서 마주친 빠알간 버찌(La ciliegia )와 앵두(Il ciliegio di Nanchino)는 이방인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5월의 따사로운 볕을 머리에 이고 몇 알을 입에 넣으니 마치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랄까. 빠르마 시내로 첫 외출을 떠나던 날 꼴로르노 역은 여행자를 맞이하는 놀라운 환영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마주친 놀라운 광경이었다.



세상에.. 이런 기찻길도 있다니..!



새빨간 입술로 단장한 양귀비꽃(Il papavero_Papaver somniferum)들은 기찻길 옆 비나리오(Il binario ferroviario) 곁으로 무리 지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첫눈에 화들짝 반하고 말았다. 양귀비꽃과 기찻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체가 만나 오만가지 판타지아(fantasia)를 불러일으키는 것.


나는 잠시 후 경고음을 울리며 도착한 짧달막한 기차를 타고 파르마로 떠날 수 있고 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새빨간 꽃잎을 다 떨굴 때까지 주야장천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운명. 우리네 삶에서 자주 봐 왔던 참 아스라한 풍경이었다. 나의 운명 혹은 우리의 운명과 너무 흡사한 것. 우리는 만나는 즉시 어디론가 떠나야 했지..!


PARMA_양귀비꽃과 기찻길 la Stazione di Colorno_Papaver somniferum


la Stazione di Colorno_Papaver somniferum
Aspettava il Treno PARM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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