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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1. 2019

제비꽃과 어떤 아이

-아가야 아가야 우리 아가야


한 아이가 툇마루를 나서 뒷마당으로 걸어간다.



그곳은 그 아이의 엄마에게 주어진 작은 공간. 툇마루를 나서면 오른쪽으로 부엌이 있고 왼쪽으로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단이 있다. 계단 옆에는 아이의 엄마가 가꾸는 꽃밭이 있고 그 곁으로 장독대가 반듯하다. 아이의 엄마는 매일 몇 차례씩 장독대를 오가며 된장을 퍼 나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장독대 깊숙이 허리를 숙이곤 했다. 장독대에는 큼지막한 항아리와 중간 크기의 항아리는 물론 작은 항아리까지 어우러졌다. 마치 옹기종기 모여사는 한 가족을 연상케 하는 공간. 아이는 툇마루를 나서다가 엄마를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장독대를 다녀오던 엄마가 잠시 꽃밭에 앉아 화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에궁 이쁘기도 하지.. "




그 아이는 엄마의 대화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화초와 대화를 나누다니. 아이 엄마는 꽃밭 곁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와 눈을 맞춘다. 그리고 씩 웃어 보이며 함지박을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엄마가 스쳐간 자리에서 젖내가 나는 것 같다. 아이는 조금 전에 엄마가 다녀온 장독대 곁에서 보랏빛 꽃잎을 내놓은 제비꽃 한 무리를 발견한다. 그 무리들은 장독대와 우물 곁에서 언제부터인가  잡초처럼 모여 살았다. 



아이는 엄마를 뒤로 하고 황톳빛 뒷마당에 내려서며 기다란 작대기 사이 빨랫줄에 널린 하얀 이불 홑청에 다가간다. 아직 풀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불 홑청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다. 풀냄새 가득한 이불 홑청 속에서 세상은 뽀얗게 잠시 모습을 감춘다. 아이는 풀냄새가 엄마 냄새로 착각한다. 툇마루에 다가서면 무시로 들리던 다듬이질 소리. 바삐 움직이던 아이 엄마의 동선은 부엌에서 장독대로 이어지는 짧은 곳. 그곳에 작은 꽃밭이 있었다. 엄마를 뒤로 하고 아이는 길을 나선다.



뒷마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자주 들르는 곳. 그곳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 실개천 속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개구리밥과 잡초가 뒤엉킨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천천히 유영하다가 그림자에 놀라 후다닥 사라지던 곳. 가끔씩 메기는 수염을 내놓고 어슬렁거렸다. 올챙이들은 청개구리와 따로 놀고 있었다. 개울에는 물방개도 살고 있었다. 소금쟁이는 요술을 부리듯 물 위를 사부작사부작 걸어 다녔다. 가끔씩 날씬한 물잠자리가 실개천 곳곳을 기웃거렸다. 


그러한 잠시 아이는 실개천에 놓인 작은 돌다리 몇 개를 건너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아이와 눈을 맞추자마자 얼굴이 발그레해진 진달래가 아슬아슬 절벽에 매달린 곳. 그 언덕 위에 서면 아이 엄마가 장독을 들락거리던 뒷마당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이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곳은 동네 친구들과 처음 가 본 후 아이가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집에서부터 꽤 먼 곳. 그 골짜기에 들어서면 물이끼들 사이로 수정 같은 물이 졸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고사리손을 내밀어 한 모금 물을 훔쳐 입에 담는다. 달콤한 물 내음이 입안 가득할 즈음 아이 엄마는 아이를 찾아 나선다.


"아가야 아가야 우리 아가야.. 배도 안 고프냐.."



아이 엄마는 풀 먹인 하얀 앞치마 가득 함지박을 안고 꽃밭에서 잠시 쉼을 얻곤 했다. 그 아이가 머리가 다 큰 다음에 안 사실. 아이 엄마는 어느 봄날 중풍을 앓다가 칠 남매를 남기고 7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세월이다. 제비꽃이 필 무렵. 아이 엄마가 찾던 그 아이는 시방 피렌체에서 한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Viola del pensiero_con mia moglie
La primavera del Hamyang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어느 봄날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 아내의 화우들과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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