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만든 아내의 새로운 취미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떠나시라..!!
서기 2020년 5월 10일 오전 4시 40분경, 아내와 나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집에서 막 대문을 나섰다. 문밖은 아직도 어둠이 짙게 깔린 가운데 가로등 불빛이 줄 사탕처럼 도로 가장자리를 횡금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 해돋이가 시작되려면 1시간은 족히 지나야 했다. 우리는 이탈리아 남부 평원에 지천에 널린 풀꽃 등 천상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산책 겸 소풍을 떠나는 것이다.
이날 아침 우리가 준비한 간식은 따뜻한 녹차와 포카치아(Focaccia) 빵 두 쪽과 꼬르네또(cornetto) 그리고 과일(사과, 배)과 삶은 계란을 배낭에 담았다. 목적지에서 마음껏 싸돌아 다니고 나면 시장기가 몰려들 것이며 잠시 꿀맛 같은 휴식시간에 돌입할 것이다.
비루스 사태가 완화되기 시작한 직후부터 우리 내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콕의 설움과 지겨움을 풀고 있는 것. 아침 일찍 아니 한밤중에 일어나 소풍을 준비하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적어도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발품을 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동안 오른발 뒤꿈치에 커다란 물집이 잡히고 진통 소염제까지 먹어가며 강행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 산책 겸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진다. 이 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어도 싫기는커녕 날이면 날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마치 천국을 다녀온 느낌이랄까..
이날은 전혀 뜻밖의 풍경이 우리 내외의 발길을 붙들었다.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평원의 해돋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막 브런치를 열어 스크롤바를 내리면 붉게 물들기 시작한 해돋이 풍경 앞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평원의 일출은 도시에서 만나던 일출과 사뭇 다른 풍경으로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해돋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잠시 설명을 깃들이며 링크된 지도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시내 중심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우리 앞에 아드리아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나타나는데 우리는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포도원 곁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등 뒤로 해돋이가 만든 불타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사실과 함께 가슴에 살포시 안긴 해돋이가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황홀감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변하게 된다. 삼각대를 지참하고 차분히 황홀경에 빠져들면 좋으련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걸어야 우리의 연식에 맞는 주행거리를 갈 수 있을 것.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걸어서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그런 선택은 무리할 뿐만 아니라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게 오늘날 우리의 실정이랄까..
먼 나라 파타고니아 땅에서는 그런 여유와 배짱이 넉넉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침 산책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시대가 된 것이다. 비루스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 시대에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는 건 행운 이상의 선택받은 삶이나 다름없었다. 행운은 그냥 손에 잡히지 않는 법..
그동안의 여행 노하우에 따르면 무엇이든 질러봐야 했다. 이를테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는 게 정해진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보다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날 아침 우리의 선택이 그랬다. 막연하게 그곳에 가면 그럴듯한 풍경이 기다릴 것 같은 생각만으로 한밤중에 일어나 간식을 챙기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상황을 지난해 여름부터 준비해 두었다. 아내가 한국으로 볼일을 보고 돌아오면 함께 떠나고 싶었던 곳이랄까.. 그곳은 올리브 과수원과 포도원이 광활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야말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는 온갖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곳. 아내가 한국에서 귀국한 지난 2월 23일 이후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루스 사태가 아내의 발목을 잡은 건 나의 브런치 독자들이 다 아시는 사실이다.
그런 아내에게 산책 혹은 소풍은 얼마나 큰 선물일까.. 방콕 세상을 겪고 있었던 아내는 한 달이 지나자 폭발 직전에 다다랐다. 누군가 곁에서 조금만 삐딱한 말만 거들면 금세라도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 그런 아내가 요즘 취미를 붙인 건 사진이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던 것이랄까. 아이폰에 담아온 풍경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재생되어 방콕의 설움을 털어내는 것이다. 이날 아침, 아내는 작심한 듯 방콕의 설움을 먼지 털 듯 마구잡이로 털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평원을 붉게 물들인 해돋이 앞에서.. <계속>
L'Alba nelle pianure del sud Italia con mia moglie
il 10 Magg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