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우체국의 황당한 업무처리
우리는 언제쯤 삐딱선을 타게 되는 걸까..?
요즘 피렌체 날씨는 장마철을 연상케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소낙비를 퍼붓는가 하면 구름 사이로 잠시 볕을 보이고 다시 여우비를 쏟곤 한다. 변덕이 죽 끓듯한 날씨.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아내와 외출을 나섰다. 피렌체 중심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장차 사용하게 될 각종 증명서를 준비하고 우리가 잘 모르는 행정절차 등에 대해 문의하는 일. 창구의 아주머니(우체국의 대부분 직원은 아주머니, 젊은 여성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친절했고 상냥했다. 업무는 생각보다 쉽게 빨리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내 중심에 위치한 삐아짜 델라 레푸브리카(Piazza della Repubblica) 광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한 유명 호텔 앞 노천카페에 진열된 보라색 꽃을 발견했다. 하늘이 우중충해서 그런지 빛깔은 더욱 선명해 보이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단렌즈에 담아 집으로 오는 동안 자꾸만 우체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덧 5개월이 지난 일이었지만 우체국을 떠올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분 상했던 일. 그 과정은 이랬다.
지난해 12월 17일, 한국에서 아내를 위한 한약을 부쳤다는 메시지가 도착한 다음 아내와 나는 줄곧 한약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한국의 우체국에서는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소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보름이 지났다. 소포는 도착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지인에 의하면 한 달을 더 기다린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한 달을 더 기다려 봤다. 소포는 도착하지 않았다. 아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약의 쓰임새는 아내의 관절 치료를 위한 것. 평소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았던 아내가 학수고대하던 약이었다. 따라서 하루라도 더 빨리 소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체국에 다시 들렀다. 그런데 우체국에서는 한국에서 부쳤다는 소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좀 더 기다려야 했다. 대략 일주일 후 다시 우체국에 들렀다. 답변은 똑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소포를 부친 게 확실하다면 선박이나 비행기를 이용했을 텐데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아내의 짜증은 점점 더 늘어갔다. 어느덧 해가 바뀌고 두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수소문 끝에 소포가 집결되는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나섰다. 한국에서 부친 전표(휴대폰 사진)를 내밀며 소포의 행방을 물었더니 알 수가 없다며 좀 더 기다려 보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내심 소포가 도착했구나 싶어 날아갈 듯 기뻤다. 이탈리아어로 빼곡히 적힌 편지 내용은 이탈리아 중앙우체국에서 보낸 소포 내용물 확인서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빈칸에 내용물을 채워나가던 중 소포가 무엇인지 묻는 빈칸에 한약이라고 썼다. 그리고 작성을 끝마친 편지는 팩스와 메일로 다시 부쳐졌다. 이 절차만 끝나고 나면 소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비록 두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긴 했지만 약을 수령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또 기다리는 방법 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웬걸.. 석 달이 다 지나도 소포는 도착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시 우체국을 찾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우체국 아주머니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니 소포의 행방을 찾아냈다. 그리고 소포는 아직까지 중앙우체국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포가 왜 아직까지 그곳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자기의 소관이 아니라 잘 모른다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한국에서 약을 부친 지 4개월이 훌쩍 지난 어느 날(정확히 2019년 4월 2일), 이탈리아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이 다시 도착했다. 어떤 소식이 들어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한편 편지 내용에 대해 걱정 반 근심반.. 편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보니 이렇게 적혀있었다.
"귀하에게 배달된 소포(한약)는 금지품목이므로 전량 폐기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화가 치미는 것. 사정이 그러하다면 당사자들이 목을 매고 기다리지 않도록 일찌감치 폐기처분 통보를 하던지 했어야 옳을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우체국에서도 양국 혹은 일반적인 협정 등에 따라 금지품목은 사전에 당사자가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어야 마땅했다. 4개월이 더 지난 어느 날 금지품목이니 폐기처분한다?.. 이탈리아에서 이렇듯 황당한 일이 발생하면 분노의 감정은 물론 멸시와 저주 등 네거티브를 담은 욕을 이렇게 소리 질러 표현한다.
이딸리아~~~
같은 종의 꽃이라 해도 톡톡 튀는 녀석이 있는 것처럼 보라색 꽃들 옆에 하얀 꽃을 내놓은 녀석도 눈에 띄었다. 인간도 별로 다를 바 없지.. 아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갈피를 못 잡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데 얼마나 퍼 준 약값인데 그동안 고통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내에게 배달됐어야 했을 한약은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 이때부터 아내는 이탈리아에 대해 이탈리아인들에 대해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마음이 많이 상한 것이다. 이러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색깔이 보랏빛이었을까. 보랏빛의 상징은 이랬다.
보라는 감각과 정신, 감정과 이성, 사랑과 체념을 연결한다. 보라에는 모든 대립이 녹아있다. 보라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사이의 경계선이다. 밤이 깊어 완전한 어둠에 빠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이는 색이 보라이다. 인도의 상징체계에서 보라는 방황하는 영혼의 색이다. 현대의 상징체계에서는 비현실적인 자극에 의식을 열어준다는 심리적 마약의 색이다.
아내는 이탈리아에 대한 현실과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환상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난 후부터 이렇게 말했다.
"다른 거 다 잘하면서 이게 무슨 짓인지 몰라. 엠병 지랄도 지랄도..!!"
보라색의 심리, 사회, 주체적 정체성
색깔에 숨겨진 인류문화의 수수께끼
IL SOGNO DELLA VIOLA_28 MAGGIO
Piazza della Repubblica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