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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8. 2019

신을 본 게 아니야

-인간의 위대함이 돋보인 경이로웠던 파르마 두오모 천장화

인간은 언제쯤 위대해 보일까..?


#유년기 때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초파일 행사 


오래 전의 일이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 해마다 초파일이 다가오면 할머니 손을 잡고 가까운 사찰을 찾아 나섰다. 사찰 입구 계곡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연듯한 차가운 바람이 꼬질꼬질 땀이 밴 목덜미와 이마를 식혀주는 것. 할머니는 피곤하셨던지 큰 소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곤 했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서면 저만치 사찰의 담장이 보이고 곁으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졸졸 거리며 바위틈을 헤집고 쉼 없이 흘렀다. 또 골짜기는 거대한 고목들이 하늘을 가로막아 약간은 어두운 느낌이 들었고 사찰 입구에 들어서면 사천왕이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맞이하는 곳.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절간을 오가고 있는데 탑 근처에서는 절을 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불자들의 이런 행위가 자기 소원을 부처님께 비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사찰의 모습 가운데 어린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풍경은 세 가지. 사찰 입구에서 흘러내리던 계곡물과 울창한 고목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칼을 든 사천왕의 모습, 




#내가 만난 산신각과 바이블


또 하나는 공양간 곁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곡을 이룬 큰 바위틈에 지어놓은 산신각(山神閣)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호랑이와 백발의 인자한 모습의 노인을 만났는데 산신각에 왜 이런 그림이 걸렸는지 나중에 알게 되면서, 사찰은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연등을 접수하고 돌아서는 길에 공양간 곁에서 나누어준 음식을 맛있게 잡쑷곤 하셨다. 어린 나의 입맛에도 착 달라붙던 사찰음식. 연등 따위(?)는 비교도 되지않았다. 해가 바뀌어 다시 할머니 손을 잡고 초파일 행사에 참여할 때 마다 자연스럽게 사찰음식을  떠올렸으니 어린 녀석의 초파일은 그저 외식하는 날 정도였을까. 


그런데 한 두번 따라나선 사찰행이 신앙의 습관으로 바뀐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남들 다 가진 신(神)을 나도 가지고 싶었던 것. 그러한 일은 세상살이가 힘에 부칠 때 더욱 간절히 다가왔다. 인간의 힘이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신의 힘을 빌려보고 싶었던 것이랄까.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은 대략 15년 정도였다. 그 기간 동안 천부경은 물론 몸에 좋다는(?) 경(經典)이란 경은 다 들쳐보는 것. 마지막으로 남들 다 따라하는 바이블 읽기에 나섰다. 




#신의 존재가 무색해진 신앙생할


성격상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미인지라 기도에 심취했다. 매 순간마다 기도하고 주말이 다가오면 기도굴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바이블 통독에 들어간 것. 어느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방언 중에 유체이탈의 경지를 맛보며 바이블 66권이 한순간에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바이블의 긴 이야기가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되는 순간부터 신약과 구약이 예수가 내게 던진 메세지를 알게되었던 것. 맘마미아..!


희한하지..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이른바 신이 내게 일러준 키워드를 알고난 순간부터 신의 존재가 무색해진 것이랄까. 신을 찾게된 이유가 작은 욕심이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을 계속해서 지키고 싶다면, 그렇게 가르치고 싶다면, 또 그런 기도의 응답이 도래했다고 떠들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악한 존재가 아닐까. 


신앙생활은 심드렁해졌지만 이때부터 세상은 둘로 나뉘어 보였다. 사람을 만나는 일로부터 어떤 일을 추구할 때 사람들과 사회가 가진 양면성이 뚜렷이 부각되는 것. 누가 착한 아인지 누가 나쁜 집단인지 등이 가려지면서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좋게 포장하면 혜안이 갖추어진 것이랄까.




#인간의 위대함이 돋보인 경이로웠던 파르마 두오모 천장화


내 눈에 비친 세상은 경이로웠다. 경이롭다 못해 마치 기적의 현장을 보는 듯 했다. 늑깍이로 요리학교에 입학하면서 첫나들이 길에 찾은 곳은 에밀리아 로마냐 주의 파르마(Parma)시였다. 인구 20만 명 정도가 모여사는 작은 도시 파르마의 첫 인상은 군더더기 하나없이 깔끔했다. 세계적 농산물이 생산되는 지역이라는 인상은 간데없고, 반듯한 건축물들과 오래된 골목길이 매우 조화로운 곳에 사람들의 차림은 그야말로 이탈리아 쓰러웠다. 고급이었다. 

꼴로르노에서 작은 기차를 타고 파르마 역에 도착한 직후 마치 지남철에 끌리듯 바쁜 걸음으로 당도한 곳. 그곳에서 꼬레아노 1인은 넋 놓고 파르마 두오모 천장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르마 두오모는 1074년에 착공되어 100년의 세월이 더 흐른 1178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다시 증개축된 시기는 1284년에서부터 1291년 까지였다. 아직 르네상스가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지어졌던 경이로운 건축물. 교황청은 인간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건축물을 지었던 것일까. 먼저 나를 어리둥절 하게 만든 파르마 두오모의 천장화를 살펴보자. 느리게 보다 더 느리게..




천장화를 살펴보면 당시 권력의 중심이자 신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었던 교황청은, 신을 드높이기 위한 예배당의 천장에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새겨넣는 실수를 한 것처럼 보였다.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부조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 믿어라고 한들 차마 믿기지 않는 대단한 걸작이었다. 이같은 노력의 흔적은 위대한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로부터 엿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면서 남긴 일화를 소개한다.


..천장화는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초반에는 작업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며 매우 고생했다고 한다. 천장화는 불편한 자세로 그리기 때문에 무릎에 고름이 차고 허리가 굽고 어깨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온 것이다. 물감이 눈에 떨어져 눈이 나빠지고 피부병도 생겼다. 나중에 미켈란젤로는 “어깨를 잘라내고 잠들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린 장면일수록 대체로 사람 수가 적어진다.. 솜글님의 시스티나 예배당 -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포스트 중



두오모의 꽃으로 불러도 손색 없는 천장화는 불편한 자세로 그리기 때문에 무릎에 고름이 차고 허리가 굽고 어깨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픈 고통의 결실이었다.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면서 그리기 때문에 물감이 눈에 떨어져 눈이 나빠지고 피부병도 생긴다는 것. 오죽했으면 미켈란젤로가 “어깨를 잘라내고 잠들고 싶다”고 말했을까. 


나는 신을 모셔다 두었다고 하는 쿠폴라를 바라보면서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의 위대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작품 아래서라면 당신의 능력과 닮은 내 능력을 당신 안에서 찾게 해달라고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할 것 같았다. 오래전 어머니의 기도를 끝으로 글을 맺는다.




#천지신명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


오래전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픈 녀석이 찾는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요리의 마술사. 잠깐 사이에 뚝딱 밥 한상을 차려 내 놓는다. 그곳은 엄마의 공간이자 어머니께서 부엌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주로 기거하셨던 곳이다. 나는 어느날 엄마의 공간에서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됐다. 엄마는 두 손을 빌면서 허리를 숙여가며 절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앞에는 작은 찻상이 놓였었는데 그곳에 물 한 릇이 놓여있었다. 알고보니 찬장 한쪽에 항상 놓여있었던 물의 정체가 정화수였던 것. 


어머니께선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천지신명(天地神明)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를 찾다가 꼭 닫힌 부엌 문을 열면서 엄마의 기도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릴적 할머니 손을 잡고 나섰던 곳은 어느 사찰이었고, 나의 신앙 생활은 어느 교회에 적을 두면서 행해졌었다. 그리고 엄마의 기도와 지구반대편 이탈리아의 성당 천장화를 보면서 떠올린 인간의 모습은 서로 다른 듯 일맥상통하는 점이 보인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휴대폰의 전자파를 누리는 것처럼, 지구별 어디를 가나 엄마가 우주 저편으로 쏘아올린 기도의 텔레파시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는 것. 천지신명께 향한 기도는 잠자리는 물론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며 늘 동행하는 것이다. 풀 한포기 바람 한 점이 중요한 것도 그같은 이치 때문아니겠는가. 내가 아무도 몰래 행한 것 같은 일일지라도 천지신명은 다 알고 있는 것. 파르마 두오모 천장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장인들이 집을 나서면서 한 기도를 생각하며 떠 올린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어디를 가나 그저 우리 새끼들 잘 되게 해 주시옵소서..!"



La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piazza duomo parma
시스티나 예배당 -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La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Che Giorno era il 14 Maggio 2016 a PARM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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