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쉽게 충족되지 않는 호기심.. 이유가 뭘까..?!!
낯선 곳을 사흘간 싸돌아 다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이것도 병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병명도 뚜렷치 않다. 이 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 한 번 맛을 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몹쓸 병이자 나를 나 답게.. 혹은 하니를 하니답게 만드는 병의 이름은 이른바 싸돌아 다님병이랄까..
그냥 이렇게 표현하면 점잖지 못해 보이고.. 그렇다고 취미가 여행이라고 말하면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를 하지 못하는 부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시공이 매우 제한적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조금은 자유로워 보인다. 아무튼 싸돌아 다니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난 여행의 속 사람은 둘 다 다르지 않거나 똑같이 닮은 듯하다. 호기심(Curiosità) 때문이자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그 무엇이 가슴 한편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은 듯 허전한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이런 병은 누구나 옮을 수 있는 코로나 같은 것인데.. 병적인 사람들에게는 마스크 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입이나 코로 킁킁대며 냄새를 맡거나 전염되는 게 아니다. 두 눈이 멀쩡하면 곧바로 전염되는 병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는 지구별 곳곳을 구석구석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확산 또한 빛의 속도로 빠르다. 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나았을 테지만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되나..?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하니는 "우리에게 닮은꼴이 있다면 그건 싸돌아다니기이지..!!"라며 가끔씩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서기 2020년 7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의 짧은 여행은 우리가 말하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였다. 이탈리아 지도에 새겨진 그곳은 가르가노 국립공원(Parco Nazionale del Gargano)이라 써 놓았다. 관련 글에서 언급한 바 바를레타에서 운동 겸 산책을 나서면 늘 수평선 너머로 거무스름하게 보이던 곳이었다.
참 궁금했지만 그땐 자동차를 마련하지 못한 때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 우리는 마침내 돌림병처럼 찾아오는 전염성 강한 싸돌아다님을 강행한 것이다. 이런 짓은 너무 익숙해서 하니와 나는 준비를 따로 분담할 필요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하니가 당신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끝마치는 것. 그리고 뒤가 구린 것도 없이 집을 나서는 것이다.
나의 브런치를 빛내 주시는 독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준비물 중에서 결코 빠뜨리지 않는 게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최소한 50년은 더 된 나의 해묵은 습관이자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는 준비물은 다름 아닌 카메라이다. 내가 카메라를 손에 쥐기 시작한 이후로 녀석은 늘 나와 함께 동행하며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내 삶의 기록장치가 되기도 했다.
필름을 사용하던 흑백시대 때부터 컬러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카메라는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어떤 때는 화장실까지 동행하기도 하는 것. 오해하지 마시라. 볼 일을 보기 위해 카메라를 화장실 바깥에 덜렁 둘 수는 없지! 그래서 하니는 나의 해묵은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아끼지 않다가 어느 때부터는 입을 다물었다. 사진이 남다르다나 뭐라나.. (흠.. 자랑질!! ^^)
똑같은 장소에 출사를 다녀와도 나의 시선은 특별해 보이는 것. 사진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도 아니지만 취미로 시작한 사진은 나의 삶이 된 지 꽤 오래된 일이었다. 금번 가르가노 국립공원으로 갈 때는 두 개의 휴대폰 포함해서 카메라는 3개가 작동하고 있었다. 요즘은 하니 또한 아이폰으로 '사진 찍는 맛'에 들어 못 말리는 수준까지 돌입하고 있다. 세상이 확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사진 찍는 일이 고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언제인가부터 카메라는 사람 수 보다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브런치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여러 사진들을 보면 사진의 속성처럼 따로 긴 여행기나 감상문 따위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누군가 사진은 언어라고 정의해 두었기 때문에 언어의 또 다른 모습이 사진이자 사진 속의 피사체는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
여기까지 스크롤바를 굴리고 내려오신 분들은 풍경사진 속이 궁금해질 것 같다. 도대체 저곳에는 누가 사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하니가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하니는 이곳에서 한 달만 살고 싶어 했다. 이곳은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북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동차로 천천히 천천히.. 안단테로 느리게 이동하며 카메라에 담은 풍경이다. 나는 이곳을 장화 뒤꿈치라는 조금은 무례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현지인 또는 이곳을 다녀간 여행자들은 아드리아해의 진주(Perla dell'Adriatico)라고 불렀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였으면 진주라고 불렀을까..
아드리아해의 진주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위 자료사진 한 장을 설명하면 이러하다. 좌측으로 작은 섬 하나가 보이는 풍경 오른쪽 바다를 끼고 솔숲 너머로 가면 우리가 망중한을 즐기던 곳. 짧은 여행기간 동안 우리는 대략 8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길을 오고 갔다. 고불고불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바닷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그러한 착각은 소나무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인 것처럼 한국인의 기상과 정체성을 말할 때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지. 솔잎이 널린 솔밭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애국가가 절로 떠오르곤 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수많은 나무들 중에 유일하게 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는 우리가 어디로 싸돌아 다니든 우리의 정체성을 붙들어 주고 있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형과 누나로부터 배웠던 애국가는 군사독재 시절이 끝나갈 때까지 애국심을 강요(?)하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우리나라 선수들이 딴 나라 선수들과 싸우는 축구경기 시작 전 의식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어떤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마치 유년기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골짜기로 싸돌아 다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어머니께선 그런 녀석을 향해 "이 눔아 배고프면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지..!"라고 말씀하시며 "어여 씻고 밥 먹어..!"라고 했다. 이때부터 우적우적 정신없이 밥 풀질을 해대다가 식곤증에 빠져드는 것. 글쎄다. 이런 짓이 한 번 혹은 두세 번이면 족할 텐데 싸돌아다님 병으로 발전하게 될 줄 누가 알았누..
우리는 다시 맨 처음 만났던 전망대 위에서 스피아지아 디 뷔에스떼(Spiaggia di Vieste)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년기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건 호기심이자 나를 나 답게 만들어준 오래된 습관이었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서 만난 풍경은 식곤증을 따라 자빠지는 꿀잠 속에 나타나 감동을 배가시켜 주는 것. 그때마다 날이 새면 다시 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니도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충만했다. 호기심은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해묵은 감정이자 귀소 본능 같은 것이랄까.. 우리는 조금 전 아드리아해의 진주 뒤편을 둘러보고 다시 전망 좋은 언덕 위에서 뷔에스떼 해변과 저 멀리 아드리아해의 진주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하얀 석회암에 촘촘히 박힌 소나무 때문에 먼 나라 낯설었던 나라가 가슴에 꼬옥 안기는 것.
그 곁에서 아드리아해는 쉼 없이 하얀 거품을 머금고 뭍으로 달려들었다.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즈음이 놀라고 있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 혹은 유럽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의 머릿속에는 아드리아해의 진주가 빠져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대략 2천 년 동안 쌓아둔 유적지와 유물들을 찾아 헤매는 동안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의 절경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거나 알 수도 없었던 것. 이 같은 절경을 찾아낸 것도 싸돌아다님 병 때문이자 나를 나 답게 만들어준 오래된 습관 혹은 추억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 취미들은 닮은 듯 서로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니와 닮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약속이나 한 듯 내뱉는 말이 있다. 생김새도 생각도 다른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분모는 딱 하나..!
우리에게 닮은꼴이 있다면 그건 싸돌아다니기..!!
아드리아해의 바람이 무시로 드나드는 솔밭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다음날 아침 작전을 감행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아드리아해의 진주 속살을 보러 가는 것. 천하일미의 요리를 맛보듯 먼저 눈으로 먹고 코로 향기를 탐한 후 입속으로 요리 한 점을 가져가는 것. 다음날 아침, 우리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방황하며 허기진 호기심을 채워나갔다. <계속>
Il Nostro Viaggio_Voglio andarci di nuovo
il 25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