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우리는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
2020년 7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 동안 이어진 짧은 여행은 하니와 나에게 시사하는 바 컸다. 짧은 여행을 통해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도된 야영은 우리가 꿈꾸고 있는 또 다른 여행의 맛보기나 다름없었다. 살짝 간을 본 야영의 맛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 지경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브런치 이웃의 글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캠핑 열풍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 짬짬이 골짜기를 찾아 캠핑을 떠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참 꿈만 같은 이야기다. 요즘은 자동차가 있어서 오토캠핑이 가능하지만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였다. 군용 A텐트와 그 무거운 배낭 속에 버너와 코펠 등의 장비를 넣고 목적지로 이동한 다음 취사와 야영을 했다. 배낭 속에는 '야삽'이라 부르는 야전용 삽까지 챙겨 넣었으므로 쌀가마를 등에진 것처럼 짐은 무거웠다. 돌이켜 보면 그 무게는 세월을 따라 조금씩 가벼워져 마침내 오토캠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대략 40년 전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캠핑 문화는 많이도 달라진 것이다.
얼마 전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자동차를 장만할 때 하니는 캠핑 전용 자동차 즉 캠핑카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여행을 보다 더 편리하게 오래 이어질 수 있는 캠핑카는, 이곳에서 흔히 만나는 자동차로 캠핑의 꿈을 완성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반대 이유를 명확히 했다.
캠핑차를 이용한 여행은 집에서 하던 취사는 물론 샤워시설과 침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캠핑장 주변까지 이동하여 주차를 해 놓고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덩치가 비교적 큰 캠핑카는 의외로 자유롭지 못한 게 흠이었다. 오토캠핑장에 주차를 하거나 한적한 곳에서 주차를 해 놓고 그곳에서 지내거나 여행지로 떠나는 과정이 별로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남미 일주를 통해서 본 파타고니아의 여행자들은 대부분 아날로그 캠핑을 선호한다. 그들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오지로 발품을 팔며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도시에서 듣던 바람 소리는 물론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빛과 바람과 어둠과 골짜기를 적시는 물과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대자연속에서 작정한 날 만큼 지내는 것이다. 문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야영(野營, 캠핑)이란 그런 것이다. 것이었다.
여행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려줄 야영은 당신의 존재는 물론 현재의 좌표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육분의(六分儀_Sestante) 같은 것이랄까. 야영족들은 다양한 여행법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쏟아내고 공유하는 세상이 된 지 꽤 오래됐다. 어떤 야영족들은 수백 미터 이상 높은 절벽 위까지 암벽 타기(rock climbing)를 통해 세상을 굽어보며 공중에 매달리다시피 잠을 잔다. 보통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서가 될 것이다.
그 언덕에 해가 저문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내가 만약 청춘이라면 암벽 타기를 통해 피츠로이(Monte Fitz Roy) 암봉에 매달려 세상을 굽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하니와 함께 바라본 피츠로이 암봉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는 천국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야영이 그런 나의 욕망을 채워줄 리 만무한 것이다. 아무튼 야영은 문명에 살고 있던 한 인간이 잠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랄까..
표지 사진 아래 자동차 한 대가 주차된 곳이 뷔에스떼 해변(Spiaggia di Vieste)이 잘 조망되는 언덕 위의 모습이고 해질 녘 풍경이다. 하니가 잠시 짐을 고르고 있는 동안 나는 언덕 곁에 자생하고 있던 야생화로 다가가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녀석들은 어느새 가을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모습들. 우리가 겨우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먼 여행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흘 동안 지내는 동안 우리는 조석으로 이곳을 지나다녔다. 한 번은 솔밭으로 다시 뷔에스떼로 오간 것이다. 그 언덕 위에 서면 우리 가슴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풍경이 바람과 파도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곳. 달님을 맞이하려는 의식일까.. 그 언덕에 해가 저물면 뷔에스떼 해변을 굽어보던 하얀 석회암이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하니와 내가 낯선 곳에서 머리를 뉜 곳은 뷔에스떼 해변이 잘 조망되는 이 언덕 위 좁은 전망대가 위치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언덕 위에서 사진 한 장만 찍고 달랑 사라지는 것. 덕분에 하늘은 우리에게 머리를 뉠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머리를 뉜 곳 혹은 현재 위치는 이탈리아의 가르가노 국립공원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연식은 저만치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도시 뷔에스떼를 천국 삼아 잠시 머무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는 무렵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백발로 변해있는 것. 누구나처럼 언제인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것인데.. 그때 달님을 맞이하기 위해 횡금 빛 가사(加賜)를 몸에 두르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태어난 곳도 부모도 개성도 천차만별인 것처럼 자연을 대하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누군가의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하면 당신이 일하고 살던 곳을 떠나 먼데로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행은 쉽지 않은 일.
대부분은 현재 생활의 연속에 머물게 된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도 그 습관은 운명처럼 질기디 질기게 이어져 어디 한 곳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유행어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우연찮은 게 아니랄까.. 여행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여행지에 있지 않고 당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야생의 원시인이 문명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언어조차도 야생과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서 야영을 통해서 우리가 잊고 살던 문명 저편의 원시인이 느끼던 감정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한 번 지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별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뷔에스떼 해변과 멀리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작고 아담한 도시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서 별님과 달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풀잎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 가는 언덕 위에서 황금빛 가사에 솔잎으로 수놓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천국의 문턱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들었다. 하루에 한 번 치러지는 일몰의 의식이 우리 앞에서 한 올도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것.
만약 캠핑카 안에서 이런 풍경을 맞이했다면 방 안에서 가족과 함께 바라보던 텔레비전 속에 박재된 영상으로 남지 않을까.. 움직임만 있고 느낌과 향기는 생략된 반신불수의 공간이 그대들을 맞이할 텐데 그래도 좋은가.. 좋을까..?! 그 언덕에 해가 저문다. 바람이 분다. 곧 하늘은 이부자리로 바뀔 것이며, 우리는 별이 촘촘히 박힌 은하수 속으로 사라지며 단꿈을 꾸게 될 것이다. <계속>
Il sole tramonta sulla collina_Verso Spiaggia di Vieste
il 27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