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저 멀리 아드리아해 너머로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간밤에 뷔에스떼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촬영된 사진, 이곳에서 잠을 청했다.
서기 2020년 7월 8일 오전 4시경, 우리는 뷔에스떼 해변이 잘 조망되는 언덕 위에서 잠을 깼다. 이튿날 저녁 하늘에 무수한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아드리아해로부터 무시로 바닷바람이 언덕 위로 불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촘촘하게 박힌 별들..
이른 새벽에 눈 뜨자마자 촬영된 아름다운 뷔에스떼 해변.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이다. 저 멀리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뷔에스떼(Vieste)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 별들은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별들이자, 상상력을 무한 확장하며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만든 별들이었다. 별들의 정체에 대해 형과 누나에게 물어봐도 잘 몰랐으며 엄마 아버지도 잘 모르셨다. 그렇다고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나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과 샛별과 북두칠성과 사수자리와 전갈자리 등 몇몇 별자리를 아는 게 전부였다.
새벽 4시경, 아드리아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샛별.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눈을 뜨니 저 멀리 아드리아해 너머로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은 젊은 모습으로 생존해 계셨지..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이 늦도록 평상에서 잡담을 하시며 더위를 쫓던 어른들 곁에서 멍석 위에 자리만 깔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자 일이었다. 형이나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누워서 별을 바라보며 '저 별은 내 거'라며 우기자 '그 별은 자기 꺼'라나 뭐라나.. 그런 별들은 어느 때부터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산 위에 걸쳐있던 북두칠성이 언제인가부터 하늘 높이 걸려있기도 했다.
별자리가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 때쯤 별들은 이미 마음으로부터 멀어진 다음이었다. 또 멍석을 깔고 누웠던 뒷마당이나 곁에 있던 도랑에는 집이 들어서거니 하수구로 변한 다음이었다. 그렇지만 앞동산에 올라가면 여전히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여름밤을 수놓곤 했다. 그때 서쪽 하늘에 걸려있던 달 옆에 작게 반짝이던 게 샛별(금성, 金星, Venus)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샛별을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뷔에스떼 전망대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하니와 나는 간밤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잠자리와 뷔에스떼를 오가며 뷔에스떼 공략(?) 작전을 짰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잠자리를 챙기고 곧바로 뷔에스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5시부터 7시 반까지 대략 3시간 동안 뷔에스떼를 돌아보면 모두 돌아볼 것 같았다. 시간을 7시 반까지 정한 건 이곳의 주차시간이 8시부터 24시까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주차증(7유로)을 끊을 필요가 없고 경제적이고 한적한 시간에 돌아보면 3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왜 그곳을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부르는지 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므로, 3시간이면 넉넉한 시간인 줄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앙증맞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 뷔에스떼는 낯선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별님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동안 부지런히 달려간 그곳에서 우리는 진주 알맹이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돌리듯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테라스가 맞닿을 만큼 좁은 골목길에 깔아 둔 대리석은 여행자의 발에 흙 한 톨 묻지 않게 만들어 두었다. 작은 공간까지 어디 하나 허투루 사용한 적 없는 잘 가공된(?) 도시가 오랜 세월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제자리를 지키며 이제나 저제나 우리를 기다렸다고나 할까.. 그 현장을 사진과 영상에 빼곡히 담았다.
눈을 뜨니 반짝이는 샛별
아직 해돋이가 시작되지 않은 뷔에스떼 입구에 서면 뾰족한 바위가 세월에 깎인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현지에서는 이니찌오 룽고마레(Inizio Lungomare)라 불렀다. 넓은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랄까.. 뷔에스떼는 하얀 석회석 암반 위에 세워진 작은 도시로 암반 중간쯤에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in Cielo)가 위치해 있다.
이니찌오 룽고마레를 따라 작은 언덕을 오르면 뷔에스떼 입구가 나타나며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이때 맨 먼저 우리를 반겨준 까스뗄로 포르떼싸 뷔에스떼 성(Castello Fortezza Vieste)이 고풍스럽게 언덕 위에 우뚝 서있었다. 아직 가로등 불이 켜진 상태였다.
성 입구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상수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도시가 처음 지어졌을 때 암반 위에 지어진 도시와 성에서는 어떻게 물을 공급받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오래된 성 옆으로 현대의 건축물이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반겼다.
이탈리아에 둥지를 튼 이후부터 혹은 한국에서 고성이나 유적들을 만나면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친근감이 들곤 했다. 당시와 현대의 용도는 서로 다르지만 민중들이 피와 땀으로 건축한 작품들을 보면 위대함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나 역사는 패자만 기억하고 민중들은 안중에도 없었지.. 오늘날 작품으로 변한 건축물 앞에서 그분들의 노고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아직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성 옆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저만치 바닷가의 풍경이 눈에 띈다. (관련 포스트에서 만난 것처럼) 저 바닷가에서 뷔에스떼 북쪽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었다. 도시 전체가 아직도 잠든 상태인데 하니와 둘이서 사부작사부작 새벽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해돋이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저만치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 가르가노 국립공원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샛별을 비켜간 달님이 성곽 너머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재밌다. 유년기에 우리 동네에 떠있던 달님이 이곳에도 있었네..ㅋ
세월이 제 아무리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달님은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당신의 자리를 지키겠지..
뷔에스떼 정상.. 그러니까 성 위에서 바라본 뷔에스떼 해변은 너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해변 끄트머리의 하얗고 작은 언덕이 간밤에 우리가 밤하늘의 별들을 이부자리 삼아 머리를 뉜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먼 나라.. 로마제국의 심장으로부터 불과 네댓 시간 되는 거리까지 두 꼬레아노가 샛별을 보고 찾아갔다니..
이번에는 이니찌오 룽고마레를 성 위에서 내려다봤다. 누군가에게 작명한 이유를 물어봐야 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해변의 시작 지점이라면 이니찌오 룽고스피아지아겠지.. 아무튼 조물주가 빚은 풍광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도 아름답지만 어떻게 이렇게 이 모양 저 풍광으로 빚었지.. 싹 뽑아서 하니의 소묘 연필로 쓸까 보다..ㅋ
위 자료사진 오른쪽을 살피면 뷔에스떼에서 유일하게 흙과 정원이 보이는 곳으로 성 아래 암반 위에 한 두 가구가 살고 있었다. 저곳에서 눈을 들어 올리면 (좌측 자료사진) 뷔에스떼 해변이 눈 앞에 보이는 전망 좋은 최고의 집이다.
그리고 그 옆길을 따라가면 이때부터 좁은 골목이 나타나며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다. 이때부터 뷔에스떼 투어의 진면목이 시작되는 것이다. 골목을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좁은 골목 곳곳에 만들어둔 계단은 한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지만 마을 전체는 매우 조화롭고 깨끗하게 단장되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 이때까지만 해도 인적이 전혀 없었다.
우리가 골목에 갇혀(?) 있는 동안 저만치서 해돋이가 시작됐다. 좌측 끄트머리 부분이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이다. 우리는 곧 저곳에 도착할 것이나 볼거리에 한 눈이 팔려 여전히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세상 구경 처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왜 이렇게 신기한데 많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누군가 말했지.. 감탄할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억력이 도태되지 않고 점점 새롭게 된다는 거야. 1점에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 어디론가 떠나서 감동하던지 감탄을 하면 치매가 예방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몸도 마음도 젊어질 수 있는 비결은 늘 호기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거라는 말이지.. (혼자 생각) 머릿속에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너무 똑똑하면 할수록 판단력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감동은 저 멀리 사라진다는 거지.. 이런 말 하면 '근거가 뭐냐'라고 묻지 마시라. 감동을 어떻게 머리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흠.. 너무 아름답구나.. 짜식들 너무 잘 사는 거 아닌 감..?!!) 하니는 잘 가꾸어 놓은 리스또란떼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마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샛별을 바라본 이후부터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달님은 여전히 우리를 굽어보고 계셨다. 그게 유년기 때부터 지금까지.. 다시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것. 여기서 잠깐 위키백과를 열어 샛별의 정체에 대해 알아볼까..
샛별은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으로 샛별, 새별로 불리기도 했다. 태양 주위를 224일 주기로 돌고 있으며 달에 이어서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천체이다. 조석으로 달과 함께 사이좋게 눈에 띄는 이유가 이것. 가장 밝을 때의 밝기는 -4.5등급이다. 샛별 그러니까 금성의 명칭은 오행 중 하나인 '금(金)'에서 유래하였으며, 태백성(太白星)으로도 불렸다.
금성은 그 출현 시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저녁 무렵에 나타나는 금성을 장경성이라고 부르고 새벽 무렵에 나타나는 금성을 샛별 혹은 명성(계명성)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 샛별은 다른 이름으로 명성 혹은 계명성이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로마 신화의 미를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을 따라 비너스(Venus)라 부른다. 지구형 행성인 금성은 크기와 화학 조성이 지구와 매우 비슷하여 지구의 '자매 행성'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금성의 표면은 반사도가 높은 불투명한 구름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가시광을 통해서 표면을 관찰할 수는 없다.
20세기에 들어와 행성과학자들이 그 비밀을 풀기 전까지 금성에 대하여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금성은 지구형 행성 중에서 가장 농밀한 대기를 가지고 있다.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이고, 표면에서의 대기압은 95 기압에 이른다.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샛별의 정체성 일부는 이랬다. 과학자들도 잘 모르고 있었던 샛별의 정체 서울 알고 나면 더 재밌다. 샛별도 지구처럼 공전과 자전을 한다는 사실이다.
금성은 태양 주위를 평균 거리 약 1억 600만 km를 두고, 224.7일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 태양계의 행성들 중에서 금성의 궤도가 가장 원에 가깝다. 궤도 이심률은 0.01 이하이다. 내합 시에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데, 이때 거리는 약 4000만 km이다. 금성의 회합 주기는 584일이다. 금성은 243일을 주기로 자전한다. 태양계의 여덟 행성 중에서 가장 느린 자전 속도이다. 따라서 금성에서의 하루는 거의 1년과 맞먹는다.
적도에서 금성 표면은 시속 6.5km로 자전하는데, 지구 적도에서의 속도는 1600km에 달한다. 금성의 태양일은 116.75일이다. 따라서 금성 표면의 관측자는 태양이 매 116.75일마다 서에서 떠서 동으로 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금성의 자전은 여느 행성과는 달리 북반구에서 보았을 때 시계방향으로 자전하고 그 속도 또한 매우 느리다.
이것은 금성의 자전 속도가 처음으로 측정된 이후 풀리지 않은 의문 거리이다. 원시 태양계 원반에서 금성이 처음 생겼을 때는 그 자전 속도가 지금에 비해 훨씬 빨랐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수십억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무겁고 두꺼운 대기에 작용하는 조석 효과가 금성의 자전 속도를 늦추었을 수 있다고 한다.
샛별에 대한 정체성을 알면 알수록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ㅜ 유년기 때 주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샛별에 대한 호기심은 저만치 사라졌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걸 다 알아서 뭐해..!!) 나는 그저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착한(?) 샛별이.. 똑똑한 지식으로 무장한 샛별보다 더 좋단 말이야!!
날이 밝아오자 뷔에스떼는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뷔에스떼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가슴속에 콕 틀어박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니가 이곳에서 한 달만 살고 싶다는 이유를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눈을 돌릴 때마다 곳곳에 박혀있거나 형체를 내민 모습 전부가 세련미 넘치는 하나의 보석을 보는 듯 은은함이 넘치는 아름다움 투성이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토종이 세련미 넘치는 풍광을 앞에 두고 입을 다문다면 그것 또한 문제일 것 같다. 아..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이탈리아 만세!..라고 외치면 그건 또 얼마나 꼴불견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도 적지 않지만 유럽인들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나서는 것. 이들은 뷔에스떼에서 샛별과 달님이 수놓는 아침저녁의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며 김흥에 젖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1m)를 실천하고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인적이 뜸한 편이지만, 이곳 뷔에스떼 대부분은 호텔과 리스또란떼가 차지하고 있었다. 고급 리스또란떼도 있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 다수는 삣싸(Pizza)에 맛 들이고 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삣싸리아(Pizzaria)라고나 할까.. 저렴한 비용으로 저녁 시간을 연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일몰을 바라보며 하루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뷔에스떼는 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내보이며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뷔에스떼 속살을 살피는 동안 눈에 띈 사람은 유럽에서 온 관광객 1인이 전부였다. 아직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끝까지 돌아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뷔에스떼 끄트머리에 있는 끼에싸 디 산 프란체스코(Chiesa di San Francesco)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우리를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하니와 예정된 시간을 다 소비하고 돌아서면서 다시 작심을 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저녁나절의 뷔에스떼를 둘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를 다시 솔밭으로 돌렸다. <계속>
Quando apro gli occhi, la stella scintillante del mattino
il Primo Agost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