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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9. 2020

파타고니아, 혼자만 즐긴 사진첩

-깔레따 또르뗄, 흙을 밟을 수 없는 오지의 작은 마을 

삶이 무력해진 당신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싶을 때..!



누군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말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부여된 삶은 '더욱더 짧게' 느껴졌다. 100년을 산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공붓벌레로 일벌레로 돈벌레로 명예 벌레로 삶을 마감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조물주가 당신을 세상에 보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부터 당신의 존재감은 너무도 소중해 보일 것이다. 조물주는 당신이 세상에 사는 동안 특정한 일에 매달리는 벌레 같은 삶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마음껏 즐기도록 오감을 부여한 것인데 우리는 그게 목숨을 부지하는 수단으로만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나를 낳아준 엄마의 품에서 고향으로부터 조국으로부터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나시라.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나시라..라고 나의 브런치 북 <더 멀리 더 먼 곳으로>에 소개글로 써 두었다. 긴 여행을 떠날 때와 다녀온 심정을 압축해 두었는데 이번 포스트를 작성할 때 다시 열어 끝까지 읽어보니 끄트머리에 3자가 지워졌다.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 였다. 우연찮게도 이런 표현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든지 혹은 떠..!! 그래서 이번 포스트는 잠시 이탈리아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파타고니아로 떠 보려고 한다. 




파타고니아, 혼자만 즐긴 사진첩_흙을 밟을 수 없는 작은 마을 깔레따 또르뗄(Caleta Tortel)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열어본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속에는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흥이 그대로 묻어났다.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여행을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파타고니아의 여러 곳을 브런치 혹은 블로그나 페북에 실었지만, 오늘 열어본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깔레따 또르뗄은 처음 실어보는 것. 짬짬이 한 두장 혹은 몇 장의 사진을 열어 포스팅한 적은 있어도 여행사진을 대거 방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가 있다. 방대한 여행 자료 때문이기도 했지만, 몇 곳의 여행 장소는 함부로 쉽게 열어볼 수 없었다. 발효식품처럼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맛과 멋이 더해질 것으로 믿었다. 그동안 외장하드를 열어 혼자만 즐긴 것이다. 그게 어느덧 10년이 가까워졌다. 그동안 잠자코 침묵하며 주인의 부름을 기다린 기록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다시 봐도 너무 아름답다. 다시 가고 싶은 곳..!



그곳은 흙을 밟을 수 없는 작은 마을로 아주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남부 파타고니아 깔레따 또르뗄(Caleta Tortel)이라는 곳이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오지에 500여 명의 주민들이 터전을 일구고 사는 곳. 지명은 스페인어로 '또르뗄의 포구'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다. 이런 포구는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시작되는 까르레떼라 오스뜨랄(Carretera Austral(CH-7))은, 이곳까지 네댓 번 이어진 후 마지막 지점에 피오르드 깊숙한 곳에 접근이 까다로운 작은 부두 혹은 포구가 있는 것이다.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은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이곳까지 대략 1200킬로미터에 이른다. 칠레의 악명 높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당시(1976년)에 만들어진 이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오지로 연결되어 뜻하지 않게도 오늘날 오지 여행의 메카라 불릴 만큼 유명해진 곳이다. 그 현장을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기로 한다.



깔레따 또르뗄로 가는 여정


대자연의 보고 세계의 청정지역 파타고니아 투어를 계획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여행이 쉽지 않겠지만 곧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세계의 여행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붐빌 것으로 사료된다. 만약 비슷한 사태가 다시 시작되면 방콕은 그 어느 때 보다 길어질 것이며,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여행지는 어쩌면 영영 멀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호주로 가는 직항을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남하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에서 뉴질랜드를 거쳐 남미의 칠레로 북상했다. 경로는 이러했다. 


인천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di Seul-Incheon)-호주 시드니 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Kingsford Smith)-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L'Aeroporto di Auckland)-칠레 산티아고 공항(Aeroporto di Santiago di Compostela)-산티아고(Santiago del Chile)-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깔레따 아레나(Carretera Austral - Sector Caleta La Arena)-깔레따 뿌엘체(Caleta Puelche)-오르노삐렌-깔레따 엘 만싸노(Caleta El Manzano)-렙떼뿌(Leptepu)-깔레따 곤쌀로(Caleta Gonzalo)-챠이 텐(Chaitén)-뿌에르또 까르데나스(Puerto Cárdenas)-비야 마니구알레스(Villa Maniguales)-뿌에르또 아이센(Puerto Aysén)-뿌에르또 차카부코(Puerto Chacabuco)-코자이께(Coyhaique)-비야 세르로 까스띠요(Villa Cerro Castillo)-뿌에르또 리오 뜨랑퀼로(Puerto Río Tranquilo)-코 크랭(Cochrane)-깔레따 또르뗄(Caleta Tortel)-다음 여정 계속..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


지도를 펼쳐놓고 하니와 함께 다녀온 여정을 살펴보니 다시금 가슴이 설렌다. 대략 적어둔 여정 속에서 뿌에르또 몬뜨부터 깔레따 또르뗄까지 몇 군데는 생략했다. 이 코스가 앞서 말한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이며 장장 1200킬로미터로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미 지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밀조밀한 피오르드(Fiordo)에 자리 잡은 깔레따에 도착할 수 있는 것. 



여기까지 여정은 매 순간마다 처음 보는 풍광 때문에 뷰파인더가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남반구의 봄과 여름과 초가을에 펼쳐진 대자연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봄을 따라 파타고니아 깊숙이 이동한 후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본문에 삽입된 순서로 차근차근 여행 기록을 남긴 것. 



코크랭에서 우리를 태운 버스가 이곳 깔레따 또르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한 줄 착각을 했다. 버스가 도착한 곳에는 간이 비행장과 작은 포구가 있었는데 버스 도착시간에 맞추어 작은 보트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에 싣고 온 짐보따리는 보트에 나눠실었고 곧 어디론가 떠났다. 



작은 보트가 강을 타고 온 방향은 남쪽이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깔레따 또르뗄이 위치한 곳은 리오 코크랭(Rio Cochrane) 강하류였으며, 마을이 형성된 곳은 바닷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곳(종점)으로부터 산기슭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을 잇는 도로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언덕까지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 참 특별한 마을이었다. 



깔레따 또르뗄에 도착한 직후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엄청나게 큰 바위 덩어리로 만들어진 산과 노도처럼 흐르는 강물과 상상 불가한 폭포는 물론 하얀 눈을 머리에 인 빙하까지.. 그리고 생물도감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식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진면목이 눈 앞에 펼져진 것이다.



서두에 삶이 무력해진 당신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라고 말했다. 사노라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의 수를 많이 봐 왔다. 브런치 이웃 한 분은 당신의 삶을 무수리라며 겸손하게 비유하기도 하셨다. 무수리란, 고려. 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나인의 세숫물 시중을 맡아보던 계집종을 일컫는다. 물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허드렛일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아이들과 지아비를 내조하느라 평생을 다 보냈지 않았는가.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외눈박이 세상에서 나의 어머님은 물론 이웃 어머니들까지 그 너머 할머니들의 삶까지 무수리 아닌 무수리 역을 도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여성들의 삶은 좀 더 나아졌을까.. 우리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나아졌다고 하나 여성들 스스로 오래된 관습의 틀을 깨고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할까.. 



여행기를 통해 나 혼자만의 생각을 몇 자 끼적거린다. 남자 사람.. 즉 남편이 무수리를 해방시켜줄 독립군과 다름없다. 남편이 아내를 죽을 때까지 무수리로 부려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무수리를 해방시켜야 한다. 어느 날 브런치에 실린 이 포스트를 읽는 즉시 윤봉길 의사처럼 무수리 사회에 폭탄을 투척하라.. 는 것. 



그리고 오늘날 당신의 존재를 만들어준 아내와 함께 먼 여정에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진 풍광과 함께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도록 열심히 일한 한 여자 사람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삶 전부를 바쳐 남편 바라기 아들바라기 등으로 살아온 무수리 아닌 무수리.. 그래서 당신의 진정한 좌표를 상실하고 '나밖에 모르는' 유아적인 사고를 오래도록 사수하는 사람에게.. 멀리 더 먼 곳으로 떠나서 당신을 되돌아보란 것. 



그때 당신 속에서 흐느끼고 있는 '또 다른 당신'을 파타고니아에서 만난다면, 다시 세상에 태어난 기분이 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평생 동고동락한다고 약속했으면 죽음의 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게 아닌가. 좋은 것만 취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 등을 돌린다면 그건 진정한 배우자가 아닐 것이다. 남자 사람이나 여자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마침내 도착한 흙을 밟을 수 없는 작은 마을 깔레따 또르뗄


우리는 거의 1년 동안 길게 이어진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싸돌아 다니는 동질감을 맛봤다. 그 동질감 속에는 죽음까지 포함돼 있었다. 무슨 여행에 목숨을 걸어야 하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목숨을 걸고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매일이 새롭고 매사가 귀중 해지는 것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여정에 따르면 마치 꿈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었다. 여행지에서 먹고 자고 싸돌아 다니는 일은 웬만한 노동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니는 가끔씩 "노는 게 더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만, 여행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비용을 많이 들인 패키지로 훌쩍 어디론가 다녀오면 너무 편리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주일간의 패키지여행에 한국에서 자주 먹던 김치며 라면이며 김이며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장아찌 등등등 한 보따리를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먹는다. 



우리하고는 시쳇말로 '노는 방법이 다르다' 아니 달라도 한참이나 다르다. 파타고니아 여행 당시 나의 등에 짊어진 배낭 속에는 아날로그 여행 방법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코펠이며 버너는 물론 기본적인 양념이 늘 따라다녔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여행지에서는 호텔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며(유명 관광지에는 최고의 호텔이 있음) 기껏 해봤자 민박집이다. 민박집 조차 허름하여 겨우 잠자리를 만든 수준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샤워시설 조차 변변치 않은 것. 지나온 여정 혹은 앞으로 다시 이어질 여정에도 여전히 똑같은 방법이 적용됐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하니는 불평 한마디 힘들다는 내색 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기나긴 여행을 가능하게 한 나의 스페인어 구사를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랬다. 파타고니아 여행에서 스페인어만 잘 구사해도 여행은 풍요로워지는 것. 우리가 저만치 깔레따 또르뗄의 마을이 보이는 언덕(버스 종착지) 위에 서자 배낭여행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니는 그때마다 "내가 저맘때면 날아다닐 것 같다"며 부러움을 내비쳤다. 누가 말했던가 '여행의 3요소는 시간, 건강, 돈'이라고 말이다. 하니가 표현한 부러움 속에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춘 때 어디론가 멀리 떠나려면 금수저가 되어야 하던지 비용을 많이 모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간이 넉넉하려면 일에서부터 멀어져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남미의 파타고니아 여행은 금수저가 아니라도 가능한 여행이랄 할 수 있다. 스페인어를 조금만 구사해도 숙식은 쉽게 해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맨 먼저 숙소를 구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그동안 하니는 짐 보따리를 지키고 나를 기다리는 것. 그런데 깔레따 또르뗄에서는 복병을 만나게 됐다. 



나무로 짠 긴 계단 아래로 내려가 오스뻬다헤(Hospedahe-민박집)를 알아봐야 하는 것. 모처럼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려니 만만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에는 온통 나무로 만든 다리나 계단이나 길이 있을 뿐 흙은 보이지 않았다. 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은 절벽 위에 혹은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마을을 이어주는 건 전부 나무로 만든 길이자 계단이었다. 심지어 놀이터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매우 특별한 여행지..



버스가 리오 코크랭 하류에 멈추어 보트로 물건을 실어 나른 이유를 단박에 알아챘다. 보트는 강 하류의 피오르드를 돌아 깔레따 또르뗄 마을의 포구로 들어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그동안 우리가 해 왔던 여행지의 식습관에 거부반응(?)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공수된 식료품이나 생필품은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이곳에서는 가장 가까운 도시(크기는 작지만) 코크랭에서 물건을 공수해 오고, 코크랭에서는 보다 더 큰 도시 코이자이케에서, 그리고 그곳에서는 뿌에르또 몬뜨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공수해 왔으므로, 물류비용이 엄청났던 것이다. 참고로 코크랭에서 깔레따 또르뗄까지 거리는 125.4킬로미터에 무수히 많은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돌아와야 하므로 시간만 3시간이 더 걸리는 오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한 물간 토마토 한 개 가격이 우리 돈 1천 원이 넘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우리가 머문 민박집주인의 호의로 기분 좋게 1주일간의 싸돌아 다니기 삼매경에 빠져든 것이다. <계속>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Caleta Tortel, Patagonia CILE
il 29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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