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꼬드김에 넘어가다
어떤 유혹..!!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매력은 하루 이틀 만에 발견되는 게 아니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적어도 일주일 혹은 한 달이면 피렌체를 알 거 같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피렌체에 꽤 오래 머물면서 내린 결론은 참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 말 그대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내는 도시가 피렌체란 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높이나 관심사가 서로 다르므로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겐 그랬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피렌체가 매력적인 도시로 이끌게 되었을까..
#내게 특별했던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우리가 이탈리아에 머물게 된 이유는 딱 하나.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지만 우리는 달랐다. 지금은 손가락 수만큼 알게 된 사람이 있지만 이른바 어떤 연고와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저 오고 가며 만난 사람들인 것. 우리가 이탈리아에 살게 된 건 아내로부터 시작된 권유 때문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가 어느 날 노후대책 삼아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으로부터 이탈리아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늦깍이 요리사의 탄생 과정은 이랬다. 이때부터 쌍코피를 쏟으며 공부한 게 이탈리아어였으며,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외국어들은 모두 다 잊어야만 했다. 또 내가 몸 담았던 요리학교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든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관련 브런치에 소개해 드렸다. 그리고 요리 유학을 떠나면서 미리 머릿속에 그려둔 도시가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였으므로, 현장 실습은 피렌체에 위치한 한 오래된 리스토란떼에서 시작됐다. 차마 잊을 수 없는 곳.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었다.
요리 실습을 떠나기 전 학교 담당자와 당신의 선호도 등에 따라 실습장소를 택하는데 나는 계획된 범행(?)과 다름없는 장소로 떠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전답사나 다름없었던 것. 하지만 무엇이든 철저히 계획을 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게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시행착오란 경우의 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일도 적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와 형편을 공유하는 일과 카메라를 메고 피렌체를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뷰파인더를 빤히 들여다본 르네상스의 고도
카메라는 아내보다 더 오랜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친구와 함께 취미로 사진반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게 시작이었으므로 거의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 필름 사진이 좋아서 시작한 취미활동은 카메라의 연식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감흥을 느끼게 만들면서, 군에서는 전우신문의 사진기자 완장을 차고 비무장지대를 누비기도 했다. 최근에는 모 정당 주최 사진전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사진은 사진학에서 말하는 사진과 거리가 멀었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뷰파인더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거나 손을 흔드는 녀석들(?)이 너무 재밌는 것. 나의 오래된 습관이자 취미는 그렇게 나와 함께 늘 동행하는 친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따라서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시내 곳곳 골목 곳곳에 나의 발도장을 찍고 다녔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싫증이 날 법도 한데, 웬걸.. 시내로 외출을 하면 그곳에는 내게 말을 걸어오는 피사체들이 우글거렸다. 분명 어제 그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이야깃거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 내게 있어서 피렌체는 그렇게 다가온 매력적인 도시였다.
#집요한 꼬드김에 넘어가다
사람들의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흘 전 5월 31일의 일이었다. 우리가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1주기가 다가오는 동안 발도장을 안 찍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두오모 곁 메디치 예배당 앞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선은 다른 듯 겹쳐지는 곳이 많았다.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애용하는 비아 로마(Via Roma) 혹은 비아 데이 깔짜이우오리 (Via dei Calzaiuoli)가 그곳.
이날 저녁 우리는 비아 로마를 거쳐 일 뽄떼 베끼오(il Ponte Vecchio)까지 천천히 산보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열장 속에서 아우성(?)을 지르는 예쁜 녀석들을 만나게 됐다. 녀석들은 피렌체에 사는 동안 거의 매일 마주친 것과 다름없는 친근한 녀석들. 거의 매번 눈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이날은 달랐다. 제과점 진열장에 전시된 젤리(Gelatina)들이 다시금 유혹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셔터음이 여러 번 울렸다. 녀석들의 집요한 꼬드김에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세상일도 그런 것 같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려면 꾸준하고 끈질기게 또 포기를 몰라야 할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의 비결을 놓고 재능보다 끈기를 더 쳐 주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인 발명품들도 행운이 따랐던 게 아니라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의 산물이었다. 또 실패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근성을 요구한 산물이라면, 진열장에 거의 매일 닮은 듯 서로 다른 상품을 진열한 오너의 끈질긴 유혹, 끈질긴 꼬드김 앞에 언제인가 넘어가게 되는 것이랄까. 날 좀 봐봐.. 라며 집요한 꼬드김의 전략은 어디든지 필요할 거 같다. 단 이웃을 망가뜨리는 질 나쁜 유혹 혹은 꼬드김만큼은 쏙 빼두고..!
Interesse_Nella Vetrina Gelatina
31 Maggio in Via Roma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