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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3. 2019

돌아갈 수 없는 한국의 명산

#1 피렌체서 열어본 한국의 3대 폭포  

너무 먼데까지 온 것일까..?


참 자주 뻔질나게 다녔던 곳.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강원도 방면으로 떠날 때 자주 이용했던 경춘가도(경춘로)는 우리에게 남다른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다. 지금은 서울 양양고속도로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도로는 마치 연어가 자기를 낳아준 고향으로 찾아가는 길처럼 설렘 가득했던 곳. 경춘가도를 따라가다 어느덧 44번 국도(양평-양양선, 國道第四十四號 楊平襄陽線)에 들어서면 고향집 동구밖에 이른 듯했다. 


설악산의 턱밑, 인제군 북면 한계삼거리에서부터 양양군 양양읍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에 들어서면 마음은 바빠진다. 이곳에서부터 내설악과 외설악을 오고 갈 수 있는 출입구를 만날 수 있는 것. 서울에서 여기까지 도착하면 거의 집 앞 싸리문에 다다른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보통은 싸리문 안으로 들어설 때 양손에 선물꾸러미가 들려있었지만 이때만큼은 빈손이다. 그저 산행에 필요한 끼니와 간식과 물이 전부랄까. 



우리에게 설악산은 오래된 친구나 다름없었다. 만날 때마다 세상만사 다 털어놓고 흉허물 없이 지낼 수 있는 곳. 또 인자하신 어른의 품처럼 안기기만 하면 등을 다독 거리며 무슨 이야기라도 다 들어주던 곳. 그래서 설악산은 봄부터 겨울까지 구석구석 짬만 나면 찾던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느 때나 갈 수 있었던 곳. 사계절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던 곳이다. 


그중 초여름의 설악산은 특별했다. 이날 우리가 탐방할 지역은 설악산 서북능선의 대승령과 귀때기청봉이었다. 귀때기청봉은 설악산 중청봉에서 시작되어 서쪽 끝의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릉 상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서북주릉에서부터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설악산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도 하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고도 하는 곳. 달력은 5월 31일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체감 온도는 초여름 혹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였다. 따라서 우리의 등산복 차림도 모두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가 전부였고 비상시에 착용할 외투와 식량이 배낭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귀때기청봉의 유래에서 짐작이 가듯 설악산 서북능선 끄트머리에 자라는 철쭉은 초여름이 제철이다. 찬바람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한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곳곳에서 피어나는 곳. 설악산이 1982년 8월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처럼, 이맘때면 설악산 어디를 가나 희귀한 식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발아래 좁은 등산로 곁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낮선 사람의 출현에 고개를 삐죽 내밀다가 곧 숨어버리기도 하는 인적이 드물거나 뚝 끊긴 곳.. 



우리가 타고 온 자동차는 44번 국도 장수대 휴게소 한쪽에 주차해 두고 산행을 시작한다. 장수대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면 곧바로 난관을 마주치게 된다. 이른바 깔딱 고개로 불리는 가파른 산길이 눈앞에 펼쳐지듯 벌떡 서 있는 곳.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보다 더 큰 기쁨이 오게 되는 것인지. 턱밑까지 차오르던 숨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저만치서 시원스럽게 내려 꽂히는 물줄기가 두 눈에 들어온다. 이날 탐방코스에서 만날 백미 중 하나. 설악산 대승폭포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다. 




대승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폭포로 꼽힌다. 그중 남한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폭포가 장수대 북쪽 1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쉽게 믿기지 않는 전설에 따르면)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대승폭포의 물기둥은 88m 높이의 3단 폭포에서 수십 개의 물기둥이 떨어져 내리는 곳이며, 한국에서 가장 긴 높이를 자랑하는 곳. 오랜 가뭄 때가 되면 폭포의 물이 끊기기도 한다는 이 폭포는 우리 앞에서 쉼 없이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설악산에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선경이 없었다면 무슨 연유로 힘들게 산을 오르게 될까.




그런데 이 같은 명승지도 그림의 떡으로 변한 건 대략 5년 전부터였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둥지를 튼 때문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둥지를 바꾸는 동안 바쁘게 살면서 뒤를 돌아다볼 겨를도 없었거니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서랍에 있던 자료를 정리하면서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간간히 나의 페이스북을 통해 눈팅만 하던 자료들이 정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랄까. 


사노라면 등산을 할 때처럼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다. 특히 산행을 할 때 내리막이 나타나면 오히려 두려움(?)이 앞선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당신 앞에 나타난 내리막의 길이는 장차 다가올 오르막을 예비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았다. 우리 앞에 등장한 절경 대승폭포를 즐기는 것도 잠시 잠깐, 땀이 식자마자 다시 길을 나선다. 갈 길이 너무 멀다.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 1580m 
귀때기청봉(1,577m)  - 설악산 산행 코스


Taesŭng-nyŏng_Guiteghi-cheong
Le montagne delle Seolak con Mia mog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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