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테베레 강가의 망중한
까마득히 잊고 산 전설의 나라..!
지난 6월 4일 정오경, 나는 세계인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한 도시의 강가 언덕 위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은 강물의 빛깔은 잿빛으로 혼탁했으나 물살은 눈에 띄게 빠르게 움직였다. 지구별의 오래된 전설을 태동한 이 강의 이름은 테베레(il Fiume tevere)..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Roma)의 기원이 이 강으로부터 시작된 곳이다. 주지하다시피 로마는 라찌오(Lazio) 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우리나라 서울의 두배 정도이고 로마시 권역의 인구는 대략 430만여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마 건국 원년은 기원전 753년으로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인류는 그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도시 로마.. 로마 건국신화가 시작된 테베레 강 언덕 위에서 여러 상념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사흘 전, 피렌체에서 로마행 기차를 탄 건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필요한 제반 서류를 준비하는 마지막 절차를 남겨놓았던 것이므로 로마에 위치한 재 이탈리아 한국 대사관(Ambasciata della Repubblica di Corea in Italia)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피렌체로 돌아오는 기차 시간을 조금은 늦게 책정해 놓았다. 대사관의 볼일이 빨리 끝나게 되면 대사관에서 가까운 테베레강 혹은 로마의 유적지 일부를 돌아볼 요량이었다.
피렌체에서 오전 6시 50분경에 출발한 기차는 로마를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중간 기착지인 아렛쪼(Arezzo)에 잠시 머문 것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기차 창 밖의 낯선 풍경이 빠르게 바뀐 것도 잠시, 오전 9시가 다 되어 갈 때쯤 기차는 로마의 테르미니역(La stazione di Roma Termini)에 도착하며 딸그닥 딸그닥 소리와 함께 동체가 서서히 멈추어 섰다. 그와 함께 휴대폰 앱을 열어 목적지를 찾는 한편 타고 갈 교통편을 확인했다.
테르미니역은 혼잡했다. 테르미니 역사는 물론 역전까지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바쁘게 앞만 보며 어디론가 떠나는 곳. 나 또한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가능하면 빨리 볼 일을 끝마치고 테베레강 등을 둘러보고 싶었던 것. 목적지를 확인하고 역전 안내소에 들러 우리 대사관으로 가는 버스 노선과 번호를 알아봤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알아두면 유용한 정보) 테르미니 역전에서 대사관으로 가는 버스는 223번이었고, 하차할 정류소 이름은 산티아고 델 칠레(Santiago del Cile)였다.
낯익은 지명이었다. 그곳은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 꽤 오래 머물렀던 곳으로 차마 잊지 못할 추억이 서린 곳. 이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대체로 버스 내에서는 안내 방송을 통해 다음 정류소(Prossimo fermata)를 알려주는데 내가 탄 버스는 방송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 따라서 버스가 정차할 때가 되면 차창 밖 정류소 표지판을 매번 살펴봐야 했다. 그런 불편도 잠시 창밖으로 정류소가 확인되자마자 후다닥 재빨리 내렸다.
그리고 정류소 근처의 신문가판대에서 마지막으로 대사관 위치를 확인한 후, 작은 언덕 계단을 오르자 조용한 주택가 한쪽에서 태극기를 발견했다. 주변의 담장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한 채 달콤한 향기를 풍기던 곳. 먼 길을 달려와 마침내 대사관 앞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높은 담장과 닫힌 문이 재 이탈리아 한국 교민을 잠시 당혹하게 만든 것이다.
대사관으로 전화를 했다. 여기 어쩌고 저쩌고 문이 닫혀서.. (이런 덴장) 담장 한쪽으로 작은 문이 있었는데 그곳에 초인종을 누르기만 하면 딸까닥 문이 열렸다. 참고로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소 및 업무시간, 전화번호를 알아두자. 현지 교민이나 여행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 한국의 관공서에서 볼 일 등을 깔끔하게 처리해 준다.
주소: Via Barnaba Oriani, 30, 00197 Roma RM
업무시간: Orari:
lunedì 09–12:30, 14–17
martedì 09–12:30, 14–17
mercoledì 09–12:30, 14–17
giovedì 09–12:30, 14–17
venerdì 09–12:30, 14–17
sabato Chiuso(토요일 휴무)
domenica Chiuso(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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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fono: 06 802461
#테베레 강 언덕 위에서 떠올린 로마의 건국신화
대사관의 볼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두 (남녀)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매우 친절했고 꼼꼼하게 안내해 주었다. 처리해야 할 업무는 다시 한번 더 대사관에 들러야 했으므로 준비과정과 함께 한 통의 서류를 건네받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미리 계획해 두었던(만일의 사태) 장소로 이동하는 것. 대사관을 나서자 볕은 머리 꼭대기 위에서 작렬했다. 유월초 로마의 날씨는 한여름이었다.
앱을 열어놓고 보니 테베레강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누구든지 로마에 들르면 맨 먼저 가 봐야 할 곳. 그곳은 나 스스로 두 군데를 정해놓고 있었다. 로마 건국신화가 태동된 테베레 강과 테베레 강가 동쪽에 위치한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Il Palatino è uno dei sette colli di Roma)이었다. 따라서 테베레 강을 돌아보고 나서 팔라띠노 언덕 지근거리에 위치한 콜로세움(Il Colosseo)을 둘러보고 피렌체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되새겨 본 로마 건국신화
유월의 따가운 볕을 머리에 이고 바라본 테베레 강은 도도했고 유유자적이란 표현이 적절했다. 지구별의 사람들로부터 세계의 머리(Caput mundi) 혹은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로 불림을 당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로마에 붙여진 대명사이자 로마의 건국신화가 서린 곳.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 고대 그리스의 영웅인 아이네아스(Aeneas 혹은 라티누스(Latinus)의 아들)의 후예이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Romolo e Remo)가 테베레 강가 동쪽에 위치한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 위에 건설했었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에 관한 전설은 로마의 고역사가 파비우스 픽토르(Fabius Pictor)의 설에 의한 것인데 파비우스의 설에 의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아래 링크)은 이랬다.
가축을 치는 시종 파우스 툴루스는 갓난아이들을 제거하라는 아물리우스의 명에 따라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에 띄워 보냈다. 한편 비탄에 잠긴 실비아는 테베레 강에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을 실은 바구니는 얼마 후 강가로 떠밀려가 멈추어 섰다. 때마침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늑대 어미는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으며, 그리고 딱따구리가 다른 먹을 것을 날아 주었다고 한다. [2] 다른 전설에 따르면 파우스 툴루스는 그의 처 라렌티아와 함께 아물리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몰래 자신의 집에서 쌍둥이를 양육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후 형제 사이의 불화로 싸움이 일어났고, 형인 로물루스가 자기의 영역을 침범한 어떤 이유 등으로 동생 레무스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 로물루스는 자기의 이름을 따서 도시 국가 이름을 로마라고 칭했고, 로마의 건국 시조로 추대받고 있었다. 그런 한편, 고고학적으로는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때는 전설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빠르며, 기원전 8세기 혹은 9세기경, 북방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해 온 민족이 테베레 강 하구에 정착한 게 로마의 시초로 추정하고 있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시작되는 철기 시대 유적이 팔라티노 언덕에서 발견되었지만, 전설과 사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서, 로마는 라틴족의 도시 국가 건설로 출발했다는 게 사실로 여기고 있었던 것. 아무튼 테베레 강은 늑대의 젖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전설의 두 형제를 떠올리는 곳이자, 로마의 젖줄이었으며, 세계인들로부터 영원한 도시로 불리게 만든 역사의 강이었다.
#한 중년 신사의 친절한 질문 속에 감추어진 뼈 있는 말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테베레 강가를 거닐었다. 앞서 언급한 바 테베레 강물은 잿빛으로 혼탁했으나 유속이 느껴질 만큼 빠르게 흘렀다. 오늘날의 로마가 있기까지 2,5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처럼, 다가올 미래의 시간도 촌음처럼 사라질 것이나 강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또 혼탁한 강물은 세상 시름 모두를 실어 먼 바다로 떠내려 보내는 것인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테베레 강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강은 언제부터인가 느리게 느리게 매우 느리게 흘러, 보는 이로 하여금 강인지 호수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 한강이 콘크리트 속에 갇힌 운하처럼 여겨졌다면 테베레 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강가에는 습지 식물들과 동물들이 무시로 출현하고 있었고,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은 자연대로 전설 이후의 역사는 역사대로 서로 다른 듯 같은 길을 가고 있었던 게 테베레 강의 모습이었다. 또 강변을 따라 걷자니 잘 가꾸어 놓은 잔디밭과 함께 근처에는 근사한 리스또란떼와 테니스장 및 미니 축구장과 보트 계류장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내심 부러움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점(장점)이 너무 많다"라고 생각했다. 당신들의 선조가 태어났다고 기록된 전설의 테베레 강을 이토록 잘 가꾸어 놓았다니..
그러한 잠시 유월의 뙤약볕은 나로 하여금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그늘을 찾아 나서는 일이 잦더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한 나무 그늘 밑의 장의자를 발견하게 이르렀다. 그곳에는 맨 처음 테베레 강을 만났던 장소가 빤히 보이는 한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실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장의자 두 개가 놓였는데 하나는 네댓 명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빈 의자는 곧 나의 차지가 됐다. 그리고 배낭을 내려놓고 준비해온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있는 것.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다니..) 다시 한번 더 테베레 강은 물론 이탈리아에 감사를 표시했다.
"로마여, 테베레 강이여 그리고 이탈리아여.. 당신들의 환대에 깊은 감사를 표하노라..!!"
물론 감사의 표시는 속으로 했지만 나무 그늘 아래서 느긋하게 바라본 테베레 강은 참으로 넉넉했다. 로마 건국신화에서 만난 늑대 젖을 먹고 자란 형제의 전설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진 로마 따위는 잠시 잊고 땀을 식히고 있는 것. 그러부터 대략 1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등 뒤로부터 한 중년의 신사가 의자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이렇게..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여기서 모하세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중년 신사. 그의 목에는 나비넥타이가 나비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얼굴을 보니 중년의 나이. 말끔하게 신사복으로 차려입은 중년 신사였는데 그가 왜 내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는지 알게 된 시간은 거의 찰나의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물음에 "보시다시피 강가를 한 바퀴 돌아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중.."이라고 답변을 하자마자, 내가 앉아 쉬는 자리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는 곳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는 이곳 관리인이었다.
위 자료 사진은 테베레 강변 언덕 위에서 마지막으로 쉬었던 나무 그늘, 아래 영상에 주변 풍경을 담았다.
그동안 발품을 판 테베레 강변은 1892년에 문을 연 한 오래된 구락부로 일부 로마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던 것. 그러니까 내가 이곳을 입장하게 된 곳은 정문이 아니라 강변의 한 열린 출입구로 이어진 테베레 강변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강변이 지나칠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또 정원수와 유실수가 골고루 잘 심겨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장소였다. 관리인은 친절하게 출구를 가르쳐주었지만 말투에 묻어나는 경고 메시지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테베레 강의 첫 만남은 희한한 해프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아 그랬군요. 지금 막 일어날 참이었어요. ^^ "
Leggenda nelle fonti antiche/로물루스와 레무스 탄생설화
Il Fiume Tevere ROMA
Amabasciata della Ripubbrica di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