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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형길 Aug 15. 2024

기다리지 못했던 여름

저는 계절의 향수가 짙은 곳을 좋아하고 찾습니다.


계절은 사람의 오래된 장롱 같아서

누군가가 얼마나 머물렀는지에 따라서

추억의 향수가 달라지는데요

사람의 성격, 모양,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계절이라고 다 같은 여름이 아닐 겁니다.


적어도 내게 왔던 여름만큼은

닿을 수 있을 만큼에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기다렸으나 기다리지 못했던 그 여름


여름마다 찾아오는

추억의 깊이는 반복되지만 세차서


그것이 묽게 옅어져서

나였는지 당신이었는지 헷갈리는 게


점차 당신을 잊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에

화들짝 놀라 커튼 뒤로 숨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세월을 놓아줄수록

세월은, 기억을 가라앉게 하고 또 떠오르게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평선 끝에 놓인

일직선상에 우리가 무서울 정도로

바다만큼이나 받아들여질 때가 있네요.


역시나 당신과 나 사이에는

순간의 착오는 없었습니다.


전부, 부서지기 위한 항해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만 얽매어 있지는 않았는지


그러니 지나가는 것들을 바라다가

오늘을 어느 여름밤과 똑같이 여기지 않았는지


펄럭이는 당신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다시 마지막을 만드는 것도

누차 마지막을 놓치는 것도

나의 몫인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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