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이상한 약력

시인의 쓰는 에세이

by 유명종

그는 운 좋게 창백한 푸른 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고 초지일관 지구를 욕보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먹고 싸고 버리며 여전히 지구를 더럽히고 있다.


여기까지가 본질이다. 이후의 글은 그의 인생에 관한 각주 또는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뜻한 바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본문이 허술하기에 각주가 변명처럼 긴 법이다. 약력이 긴 사람이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 약력은 말 그대로 간단한 이력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에 감동과 영감을 준 적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약력의 본뜻까지 거역하며 긴 사족으로 제 영혼의 누추함과 비루함을 한사코 가린다. 두세 줄, 길어야 네댓 줄로 요약할 수 없다면 인생을 잘못 산 것이다.

어느 편집자의 약력-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학균.jpg 대구광역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벽화. 사진_이학균


그는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썼다. 재주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찍부터 글을 쓴 덕인지 시인, 문화평론가, 잡지 기자, 편집자 같은 그럴듯한 이름을 걸고 평탄하게 살았다. 애석하게도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그만의 언어나 문체도 창조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슬픔에 관한 각별한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용한 것을 좋아해서, 본문에서 말한 것을 빼고 나면 주변이나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큰 뜻을 품지 않았으므로 이 사회를 흔든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작은 것 앞에선 언제나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설렘, 슬픔, 그리움, 기다림, 뭐 이런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 무용한 기호들이다. 그는 또 숲, 동백꽃, 제주 오름, 종묘와 부석사를 사랑한다. 그가 애착하는 것은 이것 말고도 제법 많다. 천천히 읽히는 문장,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 음악처럼 들리는 빗소리, 비틀스와 김광석의 노래, LP 음반의 미세한 잡음,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의 미지근한 온도, 뭐 이런 것들…….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어떤 사람은 자신을 너무 길게 설명한다. 과유불급. 지나친 건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큰 허물이다. 적정, 적절, 적당. 이런 단어가 유난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더불어 이 글은 장자와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무용한 것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우리의 몸으로 치면 그것은 피와 숨결 같은 것이다. 이 글은 무용한 듯 보이지만 더 없이 유용한 것들, 쓸모없음의 쓸모에 보내는 작은 헌사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