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시인이 쓰는 에세이

by 유명종

그 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땅에서 불쑥 솟았다고 주장하는 기록이 더 많다. 증언에 따르면 그 섬은 오래 숨을 들이마셨다. 곧이어 둥둥 북소리가 나더니 섬 중앙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수백 미터 솟아올랐다. 회색 연기가 땅과 하늘을 다 덮어서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섬 전체가 숨이 멎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입술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다. 몇몇은 넋을 잃은 듯 잊고 지낸 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불기둥이 잦아들고 서서히 연기가 걷히자, 산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산이 얼마나 높은지 하늘에 곧 닿을 것 같았다. 품은 또 얼마나 넓은지 자신을 빼닮은 작은 산 수백을 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섬이 한라산을 낳았다고 했다. 수백 오름을 낳았다고 했다. 이 섬의 오래된 족보에 실제로 그렇게 기록돼 있다. 검은 돌과 푸른 나무,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도 전부 이 섬의 자궁에서 나왔다.


한라산과 제주 오름 군락_제주도청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우리나라의 산은 대부분 동해의 해수층이 솟구쳐 오르면서(융기하면서) 생겼다. 하지만 제주의 산은 다르다. 한라산과 제주의 모든 오름은 화산 폭발로 생겼다. 제주의 땅속에서 솟아오른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땅속에서 화산이 폭발한 것이지만, 신화와 문학에 기대어 말하면 제주의 자궁이 제주의 모든 산을 낳은 셈이다. 한반도의 자연이 동해 바다의 자식이라면, 제주의 모든 자연은 제주의 땅이 낳은 자식들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