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를 위한 헌사

시인이 쓰는 에세이

by 유명종

‘적당히’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이 부사가 풍기는 알맞은 온도를 사랑한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워 외면하지 않는 쾌적한 생의 온도, 나는 그 온도를 ‘적당히’라고 부르고 싶다.


글감 취재를 위해 2차선 국도를 달릴 때마다 나는 적당한 속도의 매력을 즐겁게 경험한다. 빠름과 느림 사이의 평화로운 완충지대. 적당한 속도는 제때 목적지에 닿게 하면서도, 동시에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선물 같은 속도다.


몇 해 전 4월의 충청도 봄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충남 보령시에서 성주사지와 부여 무량사로 향하던 길, 성주산과 만수산의 산벚꽃이 예고도 없이 벅차게 환대해 주었다. 두 산을 온통 뒤덮은 아득한 벚꽃의 물결, 그건 차라리 화엄 같은 꽃의 해일이었다.


황홀한 풍경에 속수무책 압도됐다. 나는 창문을 열고 폭죽 같은 함성을 연속으로 터뜨렸다. 지금도 그날의 광경을 떠올리면 문장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진동을 느낀다. 내 인생 최고의 벚꽃. 그것은 서둘러 달렸다면 결코 마주할 수 없었을, ‘적당한 속도’를 아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한없이 찬란한 벚꽃의 봉기였다.


다시 한번 말해보자. 나는 ‘적당히’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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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언어에 인격이 있다면, ‘적당히’는 참 억울할 것이다. 원래는 ‘정도에 알맞은 상태’라는 뜻인데, 적절·적정·중도 같은 말과 더불어 공자의 중용 철학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언제부턴가 ‘대충’이나 ‘요령’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감정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부사를 위로하고, 또 본래 뜻도 좋으므로, 이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적당히’를 조금 더 좋아하기로 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