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내려온다

시인이 쓰는 에세이

by 유명종

오래전부터 이 섬의 산이 궁금했다. 저건 여느 산이 아니다. 위성 안테나처럼 하나같이 오목하게 생겼다. 어느 산은 접시 같고, 어떤 산은 막사발을 닮았다. 지구의 산들은 바다에서 솟았다는데 비행접시처럼 생긴 저 많은 산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자료를 뒤져봐도 기록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산 숫자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그 섬엔 맥락도 없고 족보도 없는 산이 가득하다. 섬에 안개라도 피어오르면 수십, 수백의 산이 몸을 숨긴 채 일제히 어디론가 조난 신호를 보낸다. 저 산들은 필시 어느 별에서 내려와 불시착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날한시에 무전 교신을 하는가. 같은 별에서 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모양이 저렇게 비슷할 수 있는가.


요즘 들어 산의 기척이 심상치 않다. 저희끼리도 수시로 신호를 보낸다. 어떤 때는 새를 보내 말을 맞추기까지 한다.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이 섬을 떠날 것 같다. 몽글몽글 올라오는 안개를 타고, 기어이 다 떠날 것 같다.

2025-1231-1-높은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제주 오름들-제주도청.jpg 높은 오름에서 바라본 오름 군락과 한라산. 사진_제주특별자치도청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잡지를 만들 때였다. 하늘에서 찍은 오름 사진을 보고 무척 낯선 느낌을 받았다. 오름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 그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구가 아니라 어느 외계 행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느낌과 이미지가 숙성되길 기다렸다가 글로 옮겨 적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