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페인이다.
6년 만인가.
그토록 밟고 싶었던 땅이었는데
그 사이 몸도 마음도 나이 든 나는 겁이 많아졌다.
과거의 호기로움이 용기를 불어넣어 줬지만
딱 출발 전까지.
그 뒤는 현재 나의 몫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4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사람 때문인 줄 알았는데
결국 나 때문이더라.
입사 초 호되게 당하던 나는
어느새 완벽주의자가 되어 있었고,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를 탓하고 채찍질하고 활활 태워
재만 남겼다.
그렇게 앞이 깜깜해졌다.
내일, 다음 주, 한 달, 일 년.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의 내가
숨 막히고 눈물 나고 불행했다.
매일 나의 불행을 실감하는 일은 꽤 괴로웠다.
하루의 끝에서
남자 친구와 통화로 서로의 일상을 나누곤 했는데
나는 불행하고, 또 불행하다,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싫고, 힘들고, 화나고, 얼룩덜룩한 내 하루를
확인 사살당하는 기분.
다들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
속은 엉망진창으로 사는 걸까?
그러다 우연히 본 유튜브에서
한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불행에 나를 오래 놔두지 마세요.”
일단 멈춰야 했다.
그리고 나는 2년의 여행 공백을 깨고 유럽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