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ug 03. 2018

여행은 그냥 여행이니까

여행과 일상의 경계선에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은 여행처럼


언젠가 내 생일,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엽서에 적혀있던 문구이다. 그다음부터는 꽤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되었다. 아마도 그건 내 삶의 대부분은 지루하고도 치열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기에, 저 말을 주문처럼 되뇌어 여행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아름답고 특별하게 보길 바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순수함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설지만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며 가장 나다운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사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의 나일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의 대부분은 들뜨고 설레며 웃음을 달고 사니까.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이 익숙해지는 순간 소소한 짜릿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이 꼭 일상인 척 잠시 착각에 빠진다. 분명한 사실은 여행과 일상은 엄연히 다른 카테고리이다. 나의 경우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저 착각 속으로 들어간다.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나는 행복하니까.  




여행 또 가? 부러워.


항상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계획이란, 곧 실행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계속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걸어보지 못한 골목길은 많으며, 여행지는 절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보통 나는 그 여행지 속의 내 모습이 그려지면 떠났다.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겁이 무척이나 많은 편이라 신중하다. 다만 남들보다 자주, 놓지 않고 계속 그곳을 들여다본다. 이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 역시 당연히 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준비하는 나를 보고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졌다. 첫째는, 나에게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대단하다는 듯 대리 만족하고 부러워하는 표면적 이유. 둘째는, 여행은 나에게 숨구멍 같은 것이라 나는 지금 그것을 꼭 해야만 했던 초라하고 부끄러운 내면적 이유. 여행은 내 회피 수단이고, 여행지는 내 도피처다. 그리고 동시에 깊은 땅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를 멈춰 세운 브레이크이자, 우울과 무기력으로부터 잠식되지 않기 위한 생존의 선택이었다. 외부적인 어떤 사건이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해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하기도 한다. 사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생각과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내 여행에는 항상 이유가 달렸다. 보수적이고 가끔은 숨이 막히는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던 꿈을 포기할 용기가 필요해서. 매일 타고 다니던 지하철에서 문득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을 때. 처음 느낀 좋아한다는 감정과 신뢰가 동시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좌절감으로. 내가 의식하는 수많은 시선으로부터 잠시 휴식을 찾으려고. 엉망진창이고 형편없는 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이 미울 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이제껏 나는 여행이 단 한 번도 쉽지 않았다. 매번 너무나도 신기할 정도로 일정하게 어렵고 무서웠다. 가벼워지려고 떠나지만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러니 내 여행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이유는 묻지 말고 따스한 배웅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가 일상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 누군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나 역시 부럽더라.

여행이란 거...



온전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뒷모습이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늘 여행을 그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 달라지고 싶었고, 뚜렷한 해결책을 발견하길 바랐다. 하지만 여행은 그 답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들고 간 책 3권 다 읽기, 여행의 매일을 일기로 기록하기'와 같은 단순한 목표 또한 달성하지 못했다. 여행이 일상이 되면 그것 또한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자 여기저기 부딪치는 나날이다. 하지만 여유롭고 편안한 치열함이다. 문득 행복해진다. 그 행복함은 생각보다 더 진득해서 먼 시간을 건너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마저도 행복하다. 이건 굉장히 놀라운 힘이다.

 

그럼에도 답은 여행이 아닌 내 안에 있다. 어느 순간 그걸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슬프지만 온전한 나의 몫이다. 나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사실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여행은 그냥 여행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