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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Nov 07. 2024

Show Me The  장손

장손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럼 자네가 장손인거지?”

이진의 엄마 정숙은 재차 확인을 했다.

딸이 말해준 정보 중에 '장손'은 없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것, 여동생 세명, 8살의 나이차,

미리 들었던 정보에 '장손'이 더해지자 정숙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애지중지 키운 딸 이진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정숙은 영민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

우리 이진이 잘 부탁한다고.




이진과 영민의 결혼생활은 정숙의 걱정과 달리 순조로운 편이었다.

이진은 엄마의 걱정을  알고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장손이 뭐라고.

사랑하는 영민을 생각하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었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일 년에 세 번.

영민의 고모와 작은 아버지들이 모이는 그날.

맏며느리였던 영민 어머니의 희생을 담보 삼아,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정성을 다했다고 안심하는 날.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했더라도 이날만큼은 싸웠을 것 같은

사랑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결혼하고 첫 번째 제사.

이진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설날 작년 제사상이 부실했다며 우리 아버지 서운하지 않겠냐던 영민의 고모.

음식이 거의 끝날 때쯤 뭘 이렇게 많이 하셨냐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등장하는 영민의 작은아버지 가족들.



일찍이 건물을 사서 부자가 되었다는 영민의 첫째 작은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는데

 "형수님이 애써주셔야 우리가 복을 받아요"라며 취기 오른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사업가인 영민의 둘째 작은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나 제사에서는 누구보다 경건하게 술잔을 세 번 돌리고  절을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조상의 복, 어느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사 후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는 식전기도를 빼먹지 않다. 최근 사업을 확장했다고 하더니 복도 영끌하는 모양이다.


작은 보습학원 원장인 영민의 셋째 작은 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습관처럼 말했다. 이렇게 가족을 모이게 해주는 조상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하냐고, 덕분에 우리가 잘 사는 거니까 제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진은 생각했다.

제사에 가족들이 모인건 돌아가신 조상 덕분이 아니라 이진 시어머니의 노동과 희생 덕분이고.

제사를 기특하게 여긴 조상이 복을 준다면 그건 정성과 노동을 갈아 넣은 자들의 몫이라고.

제삿날 조상님들이 오는지 알아보려면 분신사바를 해야 한다던 친구말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만다.




식사 후 작은 아버지들과 상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영민.

식탁에 모여 차 한잔 마시며 안부를 나누는 작은어머니들과 그때서야 들어오는 시누들.


쉴 새 없이 설거지를 하던 이진은

‘오늘은 영민의 제삿날'이라고 이를 악문다.

제사 후 애프터 파티랄까.

집에 가늘길 이진은 운전하는 영민의 옆에 앉아 래퍼가 된다.

래퍼 중에서도 에미넴.

 


그렇게 삼 년,

이진은 더 강력한 에미넴 부스터를 장착하게 되었고

그놈의 장손을 사랑한 죄로 여전히 제삿날마다 어머니를 돕고 있다.



제사 후 설거지를 하던 이진 귀에

작은 아버지들이 영민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영민이가 장손이니까 나중엔 제사 영민이가 모셔야 되는 거야”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 영민이가 장손이잖아”  

"제사 안 지내는 집 치고 잘되는 집이 없어."

또 웃는다.


주방에 있던 영민의 작은 어머니들도 농담인 듯 보탠다.

“이진이 이제 많이 배웠지?”


"네?"


설거지하던 에미넴이 고개를 든다.

“그럼 얼른 주세요. 영민 씨랑 제가 제사 싹 없앨게요.

제사준비 다들 싫으신 거 아녜요? 어차피 어머니 혼자 하시잖아요.

복은 절만 하는 사람보다 제사 준비한 사람이 받아야 되는데 하하하”



마음속에서만 있던 말들이 소리가 되어 주방부터 거실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이진은 그들처럼 웃음으로 말을 끝냈다.

제사준비는 싫지만 조상복은 받고 싶은 그들의 웃음.

속내를 감춘 위선적 웃음.

                



"아이고 얘들이 무슨 제사예요? 자기들 밥이나 해 먹으면 다행이지."

과장되게 웃으며 이진의 시어머니가 나선다.

영민의 작은 아버지들과 작은 어머니들은 농담이었다는 듯 소리 내어 웃는다.










그리고 삼 년 뒤

이진의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진의 시어머니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조상의 복을 부르짖던 영민의 작은 아버지들 중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어 자연스레 제사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진의 시어머니가 68세가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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