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꾸는 꿈

무용실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

by 봄밤



1

덩 덩 덩 따쿵따 덩 따쿵따 쿵따쿵


다니던 속셈 학원 아래층 무용학원에서는 늘 장구소리가 들렸다.

나는 장구소리가 좋았고, 무용복을 입고 머리에 망을 쓰고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엄마는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엄포와 함께 나를 무용학원에 등록시켜 주었다.


그곳은 한국무용 전공자들이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이었고,

나는 중학생만 있는 예고입시반에 유일한 초등학생이었다.


꿈의 무게를 모르던 초등학교 5학년의 나는 그렇게 무용 전공자가 되었다.


한국무용은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앞줄에 선 언니들의 동작을 따라 하고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무용의 기본과 순서를 배웠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순서를 배우면 수업시간에 하는 무용의 순서는 거의 다 외우게 된다.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굿거리장단은 빠르지 않기 때문에 뒷줄에서 그럭저럭 튀지 않게 출 수 있었다.

문제는 빠른 장단.

자진모리장단에 뛰는 동작을 하면 무용실 거울엔 맨 뒷줄 망나니처럼 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기본기는 없지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언니들은 틈틈이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한국무용 기본장단과 박자 맞추는 법.

호흡의 중요성과 발디딤과 손동작.

뛰는 동작에는 호흡을 잡고 있어야 하고,

돌 때는 시선을 고정시켜야 어지럽지 않다는 것.

언니들에게 다정한 관심을 받으며 많은 것을 배웠고 훗날 생각하니 그것들은 내 무용의 뿌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 언니들은 모두 원하는 예술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망나니는 무용도 마음도 언니들처럼 자라 앞줄에서 무용을 하고 초보 망나니에게 틈틈이 이것저것 알려주는 선배가 되었다.


예고에 입학하고 대학입시 때까지 여러 무용 학원을 경험했지만 처음 온 후배에게 선배가 먼저 다가가는 일은 드물다.

그 시절 고작 14살, 15살 소녀들은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렇게 다정했을까.


내가 처음 무용을 시작한 곳.

나는 거기서 무용의 첫발을 디디며 다정한 마음을 배웠다.




2


예고 시절 선생님들마다 실기 시험 출제 방식이 달랐다.

며칠 전 동작의 순서를 알려주고 연습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선생님도 있었고 실기 시험 바로 전 순서를 알려주고 30분 후 바로 시험을 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선생님이 시험 볼 동작의 순서를 알려주고 나가면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맨 앞줄에 순서를 잘 외우는 친구가 자리를 잡는다.


우리의 히어로.


히어로를 필두로 다 같이 동작의 순서를 복기하며 외운다.

각자 인상 깊게 외운 부분을 나누며 선생님이 짧게 보여준 그 동작들을 몸에 익히기 위해 애쓴다.

순서를 다 외웠다고 혼자 연습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보다 잘하는 친구에 대한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무용 실력의 차이는 있었지만 열정의 차이는 없었다

우린 최고의 무용수가 되기 위해 힘껏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자가 주저앉지 않도록 꿈을 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순수한 열정이 담긴 경쟁은 상대의 발목을 잡고 올라가는 일이 없었다.



며칠 전 우리의 히어로가 공연을 했다.

축하해 주기 위해 예고시절 동기들이 모였다.

우리는 안다. 히어로가 무대에 서기까지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하는지.

꿈을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건 각자의 이유로 무대를 떠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히어로는 꿈을 떠난 우리에게 함께 꾸던 꿈이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듯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고

객석에 앉아있던 우리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음을 서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같은 꿈을 갖고 있는 동기들이 생겼다.

내향적인 성격 같은 건 아줌마의 내공으로 숨길 수 있지만 가진 꿈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건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낌없이 내어주는 동기들의 다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에 첫 무용 학원의 언니들이, 예고 시절 히어로가 생각났다.

꿈을 갖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위축되었던 나는 이제 또 한걸음 나아가려 한다.

어느 한 시절 꿈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라고, 마음의 속도가 느린 나는 배우고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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