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없는 밤,
바다는 끝없는 검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별빛조차 가라앉은 듯,
물결은 은밀하게 서로를 부딪치며 길을 냈다.
사람들은 이 바다를
‘공월(空月)의 바다’ 라 불렀다.
달빛을 비추지 않는 바다,
그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 떠다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빈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아올 계획을 세워 두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늘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 없는 밤, 공월의 바다에 귀 기울여 보렴.
그곳엔 네가 묻어둔 목소리가 파도에 실려 돌아오거든.”
하빈은 모래밭 위에 앉아,
파도와 파도 사이에 흘러드는 숨결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친구,
소미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했다.
오랜 세월 동안 연락이 끊긴 채,
한 번도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친구.
그 웃음소리 뒤에는 늘 따뜻한 위로가 따라붙곤 했다.
“넌, 결국 잘 해낼 거야.”
그 목소리는 공허 속에서 울림이 되어,
하빈의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글자를 적었다.
‘다시 만나고 싶어.’
그러자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더니,
희미한 빛의 고리가 수면 위에 번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달빛 없는 바다가
스스로 달이 되어 준 듯한 모습이었다.
빛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순간 지안은 알았다.
잊힌 줄 알았던 목소리도, 전하지 못한 마음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바다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소미야, 듣고 있지?”
그리고 파도는 대답하듯, 그 이름을 부드럽게 지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