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남긴 가장 가벼운 흔적을 따라

by 윤지안


그믐달을 올려다보는 밤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진다.
달이 다 찼을 때는 밝고 풍성해서 좋지만,
오히려 그믐의 빈자리는 묘하게 위로를 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이
언제나 반짝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믐은 말없이 알려준다.

빛을 다 써버려
더 이상 남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달은 아슬아슬한 곡선을 남기고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마음속에 켜두었던 밝은 말, 좋은 표정,
견고한 모습을

어느 날은 다 썼다는 듯

힘없이 내려놓고 싶어지는 순간.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탓하지만,
사실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기울기’의 시간인지 모른다.

그믐의 날은 빛이 부족한 날이 아니고,

빛을 숨기는 날이다.
가끔은 세상과 거리를 조금 두겠다는 조용한 선언.
고요한 음지 속에서 다시 차오를 근육을 기르는 재정비의 밤.

그믐달과 마주한 나는,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는 어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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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음: 타버린 것의 잔해에 남는 검은 메모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그을음이 남는다.
매캐하고 허무한 검은 가루.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그 그을음의 표정을

오래 들여다보곤 한다.

그을음은 매끈하지 않다. 가볍지만 쉽게 날아가고,
손끝에 묻히면 지우기 어렵다.
어쩌면 마음의 상처도 그을음과 닮았다.
다 타버린 감정의 끝자락에서,
가장 미세한 흔적처럼 남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것들.

우리는 흔히 ‘지워야 한다’고, ‘잊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그을음의 생김새를 보면

그런 말이 가혹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을음은 애초에 지워지는 구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씩 색이 연해지고,
어느 순간 스며들어 다시 풍경의 일부가 될 뿐이다.

상처 역시 그렇다.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바닥에 얇게 깔린 층이 되어

더 단단한 무언가를 붙잡게 해 준다.

가끔은 나는 그을음을 긁어내다 손끝이 시커멓게 물드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 이건 내가 통과한 시간의 색이구나.
내가 견뎌낸 감정의 밀도구나.
그렇게 인정해 주는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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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끝과 불의 뒤편에서

그믐달과 그을음은 묘하게 닮아 있다.
둘 다 ‘끝에 남는 것’의 형태다.

달이 한 달의 기력을 모두 쏟고 난 뒤 남기는

가장 얇은 빛의 조각.
불이 모든 것을 태운 뒤 남기는 가장 가벼운 검은 그림자.

끝은 언제나 비어 있고, 가볍고, 흐릿하다.
하지만 그 흐릿함이야말로

우리를 다음 장면으로 옮겨주는 여백이 된다.

사람은 꽉 찬 상태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어딘가 조금 비어 있거나, 조금 타 있었거나,

조금 무너져 있어야 한다.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가기 위해서.

그믐달을 보며 나는 다시 차오를 준비를 하고,
그을음을 문지르며

나는 지나온 불꽃의 모양을 확인한다.
이 두 순간이 겹쳐질 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진실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어둠은 늘 무서운 존재로만 이야기되지만,
사실 그 어둠이 우리의 속도를 낮추고, 눈을 감게 하고,
천천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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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번짐

오늘도 밤하늘에는 그믐달이 걸려 있다.
눈에 겨우 보일까 말까 한 선을 그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빛이 전부일 필요는 없어.”

그 말이 공중에서 가볍게 흔들릴 때,
내 안의 그을음도 살짝 흔들린다.
검게 물든 감정의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면,
어느 순간 나는 조금 더 명료해진다.

밝음과 어둠은 늘 교대로 찾아오고
가득 참과 비어 있음은 서로를 번갈아 만들지만,
둘 다 없어서는 안 되는 나의 내면 풍경이다.

오늘 나는 내 안의 그믐과 그을음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어둠은 결함이 아니라,
다음 빛을 위한 가장 유연한 준비일 뿐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늘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부드러운 농담 같은 강인함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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