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무대 위에서
《잿빛 나비》
13화. 무대 위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작고 오래된 극장이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지도 앱에서 위치를 확인하고도 몇 번을 되짚은 끝에,
은서는 조심스럽게 골목 끝에 놓인 건물 앞에 섰다.
낡은 간판 위에는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 단막극 배우 모집
누구나 지원 가능
그 문구는 며칠 전 하진이 보내준 메시지 안에 있었다.
> “이거… 서은이 예전에 말했던 극단이래.
지금은 누구든 참여 가능하대.”
은서는 처음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
극단의 문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안쪽은 적막했다.
서늘한 공기, 어딘가 먼지 섞인 나무 냄새.
그리고 조용한 조명 아래 텅 빈 무대.
은서는 가방 끈을 움켜쥐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처음 오셨어요?”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연습 있는 날이에요.
잠깐 구경해보셔도 돼요.”
**
무대 뒤편,
의자에 앉은 은서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낯선 대사들,
서툰 몸짓,
하지만 그 속에는 이상하리만큼 생생한 ‘살아 있음’이 있었다.
**
“처음이신 분 있으시면,
가벼운 동작 하나만 따라해보실까요?”
지도자는 천천히 무대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은서는 움찔했지만, 손을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무대로 걸어갔다.
발밑의 나무 판이 삐걱거렸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자, 깊게 숨 쉬고,
천천히 앞을 바라보세요.”
**
은서는 앞을 바라봤다.
불이 꺼진 관객석.
누구도 없는 텅 빈 공간.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그 안에 서은이 있을 것 같았다.
“무대에 서면, 세상이 다 안아주는 것 같아.”
서은이 했던 말이 스쳤다.
**
처음엔 몸이 굳었다.
하지만 다시 숨을 들이쉬고, 한 발 내디뎠다.
단 하나의 동작.
손을 들어, 가슴 앞에 얹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
그 작은 동작에,
은서는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연습이 끝난 뒤,
극단 조명은 하나씩 꺼져갔다.
모두가 돌아간 뒤,
은서는 무대에 홀로 남아 있었다.
조용히 무대 중앙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곳엔 박수도, 관객도 없었지만,
따뜻한 기척이 있었다.
은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서은아.
오늘은 내가 여기에 있어.”
**
그 말은 다짐 같았고,
서은에게 보내는 작은 인사 같았다.
무대는 조용했고,
그 침묵 속에서, 은서는 다시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