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꽃, 그리고 나비

by 윤지안


어떤 계절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아니, 피어서는 안 되는 꽃들이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바로 그 꽃—
죽음의 꽃이라 사람들이 속삭이는 그것은,
사실 누군가의 마지막 체온이 스며든 자리에서만 조용히 돋아난다.
그 이파리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만지려는 순간 마치 숨을 들이마신 것처럼 움찔거리며 뒤로 젖혀진다.
살아 있는 것처럼. 아니, 이미 죽은 것들의 잔향처럼.

나는 그 꽃을 처음 본 날부터,
누군가 내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꽃잎이 스르르 움직이며 들려주는 마른 숨소리는
마치 오래전 잊힌 목소리들이 모여 귓가에 올려놓은 유언처럼 들렸다.

그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날아왔다.
가벼운 날갯짓, 그러나 어쩐지 이상했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없었다.
그 나비는 색채를 잃은 도시처럼 잿빛이었고,
그 잿빛 안에는 해골처럼 비어 있는 선들이 비틀려 있었다.
나는 눈을 피하려 했지만, 마주친 순간 알았다.
그 나비는 꽃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꽃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아온 존재라는 것을.

나비는 죽음의 꽃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꽃잎과 날개가 맞물리며 흔들렸다.
그때부터 주변의 공기가 느리게 뒤틀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물 아래 잠긴 듯 가라앉고,
그림자들은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긴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조차 차갑게 식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꽃과 나비는 죽음을 부르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존재라는 것을.

누군가는 살아 있는 동안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지 못하고 떠난다.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조차 외면받고 지워진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잊힐까 두려워,
이 세상 어딘가 작은 표식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표식이 바로 꽃이 된다.
그리고 그 꽃을 찾아 돌아오는 나비는

그 사람의 마지막 감정을 품고 있다.
슬픔이든 분노든, 혹은 말하지 못한 사랑이든.

나비는 그 꽃을 떠날 때마다 비명을 삼킨 듯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이 세상에 남겨지지 못한 감정을 향한
마지막 안부처럼 느껴진다.
"여기 있었다."
"나는 사라졌지만, 나의 감정은 아직 남아 있다."
"제발, 한 번만 기억해 줘."

나는 그 나비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간,

옅은 목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아닌데 들렸고, 사람의 목소린데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속삭임.
윤곽도 없는 감정의 잔해.

그렇게 꽃은 천천히 시들어 사라지지만,
나비는 다시 어딘가의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슬픔을 품고, 공포를 끌어안고,

기억을 등에 짊어진 채로.

그 나비는 언젠가 나에게도 오겠지.
내가 외면한 감정들, 내가 버린 기억들,
내가 죽여버린 마음의 조각들을 찾아서.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일 것이다.

“너도 결국, 이 꽃의 주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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