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 걸었다.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큰일이었고,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힘내”라 말할 때마다
도리어 숨이 막혀왔고,
나조차 나에게 무엇을 바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심장은 내 것이 아니었다.
울컥 올라오는 무력감은
내 존재를 잠식했고,
나는 그저 버티는 몸 하나로
하루를 겨우 건넜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어느 밤,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나, 여기 있어.”
그 목소리는
기적처럼 크게 울리지 않았고,
빛처럼 화려하게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저 스스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직 포기되지 않은 나의 잔해들이
조용히 깜빡이며 보내온 신호였다.
그날 이후 나는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순간에 웃고 어떤 순간에 무너졌는지
하나씩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오래 방치돼 먼지가 쌓여 있던 마음의 공간 안에서
나는 다시 나를 발견했다.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래도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
무너진 흔적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빛을 찾으려는 존재.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을
스스로의 걸음으로 견뎌낸 존재.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버틴 만큼 단단해지고,
쓰러진 만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걸.
우울증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내가 어디에서 부서졌는지,
어디에서 울었는지,
어디에서 손을 뻗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
고통을 겪고도 다시 길을 찾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나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의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