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움

by 윤지안


«홀로움 - 함께 있음보다 더 오래 남는 것»

홀로움은 대개 비어 있는 상태로 오해된다.
아무도 없어서, 말할 사람이 없어서,
손을 내밀 대상이 없어서 생겨나는 감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홀로움은 비어 있기보다

오히려 너무 많이 차 있는 상태에 가깝다.
말하지 못한 말, 도착하지 못한 마음,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이 안쪽에서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움은 조용하지 않다.
외부는 잠잠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늘 작은 소음이 이어진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홀로움은 찾아온다.
웃음이 오가는 자리,
서로의 근황을 묻는 대화 속에서도 문득

나는 투명해진다.
분명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무도 나를 정확히 바라보지 않는 느낌.
말은 들리지만 도착하지 않고,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동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홀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함께 있을 때 더 선명해질 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홀로움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일정표를 채우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소음을 쌓아 올린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날들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더 깊은 홀로움이 남아 있다.
그것은 마치 잘 정리된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물건처럼 느껴진다.
제자리는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상태.
존재하지만 닿지 않는 느낌.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홀로움은 사람의 수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홀로움에는 종류가 있다.
외로움처럼 아프게 파고드는 홀로움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곁에 앉아 숨을 고르게 만드는 홀로움도 있다.

전자는 결핍에서 오고, 후자는 자각에서 온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순간에
후자의 홀로움이 생겨난다.
이 홀로움은 괴롭지만, 동시에 정직하다.
타인의 기대나 시선이 걷힌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나의 윤곽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홀로움을 실패로 여겼다.
잘 관계 맺지 못한 결과, 사랑을 유지하지 못한 증거,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끄러워했고, 숨기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홀로움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홀로울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홀로움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너 자신과 함께 있니?”

이 질문은 의외로 어렵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있는 법은 배웠지만,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법은 익혔을지 몰라도,
그 시간 안에서 나와 대화하는 법은 여전히 서툴다.
그래서 홀로움은 종종 불안으로 변한다.
침묵을 채우지 못해 생기는 초조함,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생기는 두려움으로.

그러나 홀로움과 오래 머물다 보면,
그 감정은 조금씩 성질을 바꾼다.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나를 앉힌다.
속도를 줄이게 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내려놓게 한다.
그제야 나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다듬지 않은,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목소리.
홀로움은 그 목소리가 들릴 만큼의 간격을 만들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홀로움을 통과한 사람은 타인과 더 잘 만난다.
상대를 채우기 위해 만나지 않고,
비워진 자신을 숨기기 위해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도 각자의 고요를 존중할 수 있고,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

그때의 관계는 의존이 아니라 나란함에 가깝다.
홀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적대적인 감정도 아니다.
그냥 함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감정이 된다.

홀로움은 떠나보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다시 찾아온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사랑이 변할 때,
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홀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지점에 와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길이 갈라지는 지점,
나 자신에게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홀로움을 서둘러 밀어내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번에는 무엇을 말하러 왔니?”

홀로움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때로는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때로는 더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때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혼자여도 괜찮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려준다.

결국 홀로움은 나를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감정에 가깝다.
시간이 쌓일수록 날카로움은 줄고, 깊이는 남는다.
그리고 그 깊이 덕분에
나는 누군가의 홀로움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각자의 홀로움에는
각자의 이유와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홀로움은 슬픔이지만, 반드시 불행은 아니다.
그것은 삶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신호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정직하게 살라고.
누군가의 곁에 있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의 곁에 서 보라고.

그렇게 홀로움은 오늘도 조용히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