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세계에는 시계가 없다.
대신 바람이 시간을 세고, 꽃이 계절을 말해 준다.
그곳에서 나비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날개를 펼칠 때도, 접을 때도,
모두에게 허락된 속도로만 움직인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충분함’이 무엇인지 배웠다.
나비의 하루는 목적보다 감각에 가깝다.
어디로 가야 할지보다,
오늘의 빛이 어느 쪽에서 더 따뜻한지에 마음을 기울인다.
꽃에 앉는 이유도 꿀 때문만은 아니다.
색을 느끼고, 향을 기억하고,
그 순간을 날개에 묻히기 위해서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나비의 세계에서는 과정이 곧 결과였다.
이 세계의 가장 깊은 비밀은 애벌레의 기억이다.
나비들은 모두 한때 땅을 기어 다녔던 존재였다.
스스로를 하늘의 생명이라 믿기 전에,
흙의 온도를 먼저 알았다.
그래서일까. 나비들은 높이 날아도 교만해지지 않는다.
날개에 남아 있는 애벌레의 시간 덕분에,
그들은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떨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치의 시간은 나비 세계의 침묵이다.
아무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묻지 않는다.
변화는 설명될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믿는다.
기다림은 증명할 대상이 아니고,
고통은 전시할 장면이 아니다.
다만 견디는 동안,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존재가 조용히 태어난다.
나비의 세계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없다.
날개가 젖어 날지 못하는 날도,
폭우에 꽃이 모두 쓰러진 날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날을 위한 이야기’가 된다.
나비들은 하루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의 날갯짓이
내일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만을 믿는다.
이 세계를 떠나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나비처럼 살 수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비의 태도를 품을 수는 있다.
조급해질 때마다 속도를 늦추고,
흔들릴 때마다
내가 지나온 애벌레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변화의 한가운데 있을 때,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조용히 견디는 것.
나비의 세계는 말한다.
너는 이미 여러 번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너를 서둘러 판단하지 말라고.
아직 날개는, 충분히 마르지 않았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