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 무대 뒤의 조용한 자리
《잿빛 나비》
에필로그 ― 무대 뒤의 조용한 자리
공연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은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커피를 내리고, 빨래를 널고,
밤이면 조용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무언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네는 여전히 조용했고,
거리의 나무들은 계절을 따라 천천히 물들어갔다.
하지만 은서의 마음은 달랐다.
무대 위에서 흘려보낸 감정들이
그녀를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
그날 공연을 마친 뒤,
은서는 하진과 오래 걷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괜찮은 바람이야.”
하진이 그렇게 말했다.
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조용히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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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가끔 언덕에 간다.
조팝나무가 다시 피고,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퍼지는 봄이면
그 언덕은 예전보다 더 따뜻한 자리가 된다.
그곳에서 은서는 가끔 조용히 편지를 쓴다.
서은에게 쓰는 편지.
이젠 울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쓰는 글.
> 서은아, 오늘은 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워.
네가 좋아하던 그 꽃이 또 피었더라.
나도 오늘은 조금 웃었어.
나, 잘 지내고 있어.
**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남긴 마음은
어딘가에서 자란다.
언젠가는 그 마음이 조용히 꽃을 피우고,
다시 한 사람의 시간을 밝히게 된다.
**
은서는 지금,
그 잿빛 나비가 머물렀던 자리에서
자신의 날개를 조심스럽게 펴고 있다.
서은 없이도
서은을 안고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
그것은 끝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