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전환

by 윤지안


불이 켜졌다. 그리고 꺼졌다.
그 짧은 간극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잊는다.

사람들은 명암을 조절한다.
커튼을 열고, 전등을 누르고,
화면의 밝기를 미세하게 올린다.

우리는 빛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로 조절되는 것은 언제나 나다.
밝아질수록 나는 더 또렷해지고,
어두워질수록 나는 더 많은 나를 숨긴다.
문제는—숨겨진 나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둠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스며든다.
처음엔 그림자의 가장자리가 흐려질 뿐이다.
책장 뒤, 소파 아래, 벽과 벽 사이의 접힘.
그 접힘 속에서 무언가가 늘어난다.
빛이 줄어들수록, 그 무언가는 자라난다.
나는 그것을 ‘나의 남은 부분’이라고 부른다.

명암전환은 타이밍의 문제다.
해 질 녘, 전철 창에 겹쳐지는 얼굴들,
꺼진 방에서 켜지는 휴대폰 화면.

이때 사람의 얼굴은 두 번 태어난다.
하나는 현실의 얼굴, 다른 하나는 반사된 얼굴.
반사된 얼굴은 언제나 조금 늦게 따라온다.
그 미세한 지연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지연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잊기 때문이다.

어둠은 기억을 잘 보관한다.
밝을 때 놓친 것들을 어둠은 다 기억한다.
사소한 거짓말의 온도, 말끝을 흐린 순간의 무게,
웃음 뒤에 남은 침묵의 길이.
불을 끄면 그것들이 살아난다.

침대 위에서 눈을 감으면, 나는 빛의 논리를 잃는다.
대신 그림자의 논리가 시작된다.
그림자의 논리는 단순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드러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방은 정말 어두운가?
아니면 내가 어두워진 것인가?
전등을 켜면 답이 나올 것 같지만, 그건 착각이다.
불을 켜는 순간, 답은 다시 분산된다.
명암전환은 늘 나보다 빠르다.
내가 이해하기 전에 이미 다른 상태로 이동해 버린다.

어느 날 밤, 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불을 껐다 켰다.
껐다 켰다. 반복할수록 방은 달라졌다.
가구의 위치는 같았지만,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빛이 켜질 때마다 방은 나를 밀어냈고,
꺼질 때마다 나를 끌어당겼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방은 나의 심리였다.
그리고 스위치는 내가 아니라,
내가 피하고 싶은 생각들이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를 소리나 형상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전환에서 온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

그때 우리는 확신을 잃는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계속 같은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인지.

명암전환은 정체성을 흔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크다.
대신 이렇게 묻는 편이 정확하다.
“지금의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밝을 때 나는 설명을 한다.
합리화하고, 원인을 찾고, 결론을 맺는다.
어두울 때 나는 듣는다.
결론 없는 목소리들, 이름 없는 감정들.
이 둘은 서로를 싫어한다.

그래서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충돌이 생긴다.
그 충돌의 파편이 꿈이 되고, 악몽이 된다.

나는 이제 불을 한 번에 켜지 않는다.
서서히 밝히는 전등을 선호한다.
어둠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반대로, 잠들기 전에는 갑자기 불을 끈다.
빛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환의 잔여물이 나를 따라온다.
그 잔여물은 낮에도 그림자를 만든다.

명암전환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협상이다.
빛과 어둠은 늘 나를 두고 흥정한다.
오늘은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는 그 사이에서 서명만 한다.
서명한 뒤에야 알게 된다.
계약서의 작은 글씨에는 언제나 이렇게 적혀 있다.

"전환 이후의 책임은 서명자에게 있다."

불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방을 본다.
사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둠이 오면, 그들은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 명암전환에서,
그 기억을 조용히 돌려줄 것이다.
빛이 너무 늦게 따라오도록.

나는 스위치를 누른다.
전환은 늘, 그다음에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