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아이, 나비의 시간

by 윤지안


나비는 늘 시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알과 애벌레, 번데기를 지나
마침내 날아오르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한 생의 준비라면,
날개를 펴는 순간은 언제나 처음이다.

그래서 나비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완성’보다 ‘개시’라는 말을 떠올린다.
완성은 닫힌 문처럼 보이지만, 개시는 열려 있다.
나비의 날개는 문손잡이가 아니라 문 그 자체다.

우리는 종종 시작을 두려워한다.
시작은 실패를 동반할 수 있고,

실패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을 미루는 동안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굳어갈 뿐이다.
그럴 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괜찮다, 아직 아이처럼 시작해도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른이 된다는 건 시작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시작을 책임질 용기를 얻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비가 번데기 안에서 겪는 시간은 어둡고 고요하다.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전부가 바뀐다.

몸은 녹고 다시 짜인다.
형태는 해체되고, 감각은 새로 배치된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나비는 그 시간을 건너야만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삶의 번데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과거의 선택을 되씹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한다.
그 모든 흔들림이 쓸모없어 보일 때,
사실은 가장 결정적인 변형이 진행 중이다.

‘시작의 아이’라는 말은

나에게 용서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아이는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이에게는 시도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그 권리를 반납했다고 믿지만,
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나비의 날개가 처음 햇빛을 만나는 순간처럼,
우리의 시작 또한 서툴고 떨린다.
그러나 그 떨림은 생의 증거다.

나비의 비행은 직선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되돌아가며, 잠시 멈춘다.
그럼에도 결국 꽃에 닿는다.
목표를 향한 완벽한 경로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날아보려는 의지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나비에게 결과란 꽃가루 몇 알이 아니라,
날아본 시간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날개를 접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전부다.

시작은 늘 외롭다.
함께 출발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앞서가거나
다른 길로 사라질 때,
우리는 홀로 남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나비의 길은 혼자여도 길이다.

비교는 방향을 흐리고, 속도는 마음을 닳게 한다.
아이처럼 시작하라는 말은,

비교의 자리를 비워두라는 권유다.
그 빈자리에 호기심을 놓아두자.
오늘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어떤 빛을 만날지.

때로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미숙했고, 조급했고, 겁이 많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이 없었다면 지금의 날개도 없다.
번데기 시절을 부정하는 나비는 없다.
어둠은 날개를 위한 기억이다.
그래서 시작은 과거와 단절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데리고 나아가는 일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듯이.

나는 시작을 앞둔 날이면 작은 의식을 치른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손을 씻고, 한 줄의 문장을 쓴다.
“오늘도 처음처럼.”
그 문장은 약속이 아니라 허락이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멈춰도 다시 날 수 있다는 허락.
나비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날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도 된다.

결국 삶은 거대한 이행의 연속이다.
시작과 끝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끝은 늘 다른 시작을 품고 있다.
나비가 꽃에서 떠날 때,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다음 비행의 준비다.

‘시작의 아이’는 우리 안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귀를 기울일 때만 말을 건넨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오늘의 하늘이 맑지 않아도 괜찮다.
나비는 햇빛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흐린 날의 공기에도 길은 있다.
중요한 건 날개를 믿는 일이다.

믿음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넘어져도 다시 펼 수 있다는 태도.
아이처럼, 그러나 어른의 책임으로.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나비처럼 가볍게, 아이처럼 진지하게.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삶은 가장 솔직해진다.
날아오르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시작은 언제나 우리 편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