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안을 가진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보았다고 믿게 된 순간들이 있다.
귀안은 눈에 남은 상처가 아니다.
홍채의 색이나 흉터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건 시선의 잔상이다.
어떤 대상을 보고 난 뒤, 눈을 떼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
사라져야 할 것이 남아 버린 상태.
처음 그 징후를 느낀 건,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던 때였다.
창밖은 터널이라 아무것도 없었는데,
유리 속 내 눈동자 어딘가에 다른 눈이 겹쳐 있었다.
내가 보는 방향과 반대로, 안쪽을 바라보는 눈.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볼 때마다 그들의 눈 뒤편에서
무언가가 나를 함께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호기심도, 악의도 아니었다.
단지 확인이었다.
“너도 보이기 시작했구나.”
귀안은 전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유된다.
어떤 장면을 함께 보았을 때,
어떤 죽음을 동시에 인식했을 때,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말없이 나누었을 때
귀안은 조용히 겹쳐진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못 볼 걸 봤다”라고.
하지만 귀안의 진실은 다르다.
볼 필요가 없던 것을 끝까지 보았을 때,
눈은 더 이상 닫히지 않는다.
귀안을 가진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대신, 남의 꿈에 남는다.
누군가의 불안한 잠결에,
익숙하지 않은 시선으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게 된 사실은, 설명될 필요가 없다.
나는 이제 거울을 보지 않는다.
사진도 찍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본다.
그들 안에 있는 빈자리를 찾기 위해서.
그 자리가 비어 있다면, 아직 괜찮다.
하지만 만약 그 안에
나와 같은 방향의 시선이 겹쳐 있다면—
그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간다.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귀안은 선택이 아니라
도착이라는 걸.
그리고 도착한 것들은
결코 되돌아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