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난다면
아마 큰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경보도, 폭발도 없이
그저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작동을 멈추는 식으로,
아침에 눈을 떴는데
더 이상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고
기다리는 답장도 없다는 사실을
늦은 오후쯤에서야 깨닫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끝났다는 말이 이미 충분히 오간 뒤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놓으라고.
이미 충분히 아팠으니
다음으로 가도 된다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논리보다 훨씬 느리게 걷는다.
머리는 도착했는데
마음은 아직 출발하지 못한 채
뒤를 돌아본다.
혹시 네가 아직 거기 있을까 봐.
혹시 나를 부르지 않을까 봐.
세상의 끝이란,
모든 것이 사라진 장소가 아니라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혼자서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끝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나는 끝내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너를 선택했던 모든 순간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만약 정말로 세상이 끝난다면
나는 그 마지막 자리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마음을
조용히 꺼내 놓을 것이다.
끝까지 갔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게
내가 사랑했던 방식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