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퓨리티는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했다는 기록만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처음 이 계획이 제안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윤리라고 불렀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오류를 최소화하고,
인간을 더 투명하게 만드는 일.
투명하다는 말은 언제나 선해 보인다.
속이 보인다는 것은 숨길 것이 없다는 뜻이니까.
문제는 우리가 제거하려 했던 것이
먼지나 잡음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퓨리티의 기준표에는 이런 항목들이 있었다.
- 과도한 감정 기복
- 비논리적 선택
- 설명되지 않는 슬픔
- 생산성과 무관한 애착
- 반복되는 후회
우리는 이것들을 오염 변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기준을 통과시키는 일을 맡았다.
처음엔 쉬웠다.
타인의 기록을 읽고, 감정을 수치로 바꾸고,
‘정상 범위’ 밖에 있는 것들을 잘라냈다.
울음은 패턴으로,
그리움은 잔존 데이터로,
사랑은 비효율적 루프로 분류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보고서를 검토하다가
“이상 없음”이라는 문장을 세 번이나 다시 썼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감정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기쁘다고 말하면 거짓말 같았고,
슬프다고 말하면 과장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이
막연하게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 퓨리티는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는 정화를 외부에서만 진행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준을 만드는 순간,
그 기준은 내부로 스며든다.
나는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 왜 이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가?
- 왜 이 기억을 삭제하고 싶지 않은가?
- 왜 아무 쓸모도 없는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곧 오염이었다.
나는 나를 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의 기록은 끊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웃는 법을 잊는 대신
효율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배웠고,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 관계를 최적화했다.
고통이 사라지자 선택도 사라졌다.
선택이 사라지자
나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
이것이 진보라면,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마지막 점검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했다.
“프로젝트 퓨리티: 완전한 성공”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한 후,
나는 처음으로 규정에 없는 행동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파일을 하나 복원했다.
그 안에는
논리도, 생산성도, 목적도 없는 문장이 있었다.
“그래도, 이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아직 제거되지 않은 불순물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불순물만이
나를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프로젝트 퓨리티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를 정화하지 못했다.
정화되고 나서도
끝까지 남아버리는 것.
그것을
우리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