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Human

by 윤지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잠들 수 있게 되었다.

거울을 보고, 손을 움직이고, 숨을 세는 행위들.
이 모든 것은 살아 있다는 증명이 아니라,
아직 인간이라는 변명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너답다.”
“너도 결국 사람이잖아.”

하지만 그 말속에는 늘 과거형이 숨어 있다.
너는 한때 인간이었지.

Once Human.
그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부고에 가깝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무너졌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무너지지 않았던 마지막 순간만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슬픔도, 죄책감도, 놀람도 없이
그저 상황을 정리하고, 효율을 계산하고,
“이건 어쩔 수 없지”라는 문장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간성은 사라질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뼈가 부러지면 통증이 있지만,
감정이 부러질 때는 아무 감각도 없다.

Once Human이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그 안에 변화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괴물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시점부터 인간이 아니게 될 뿐이다.
우리는 흔히 괴물을 외형으로 구분하려 한다.
기형적인 몸, 왜곡된 얼굴, 비정상적인 행동.

하지만 진짜 공포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말투도 그대로, 표정도 그대로,
도덕에 대한 이해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단 하나,
느끼는 능력만이 조용히 제거된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을 인간이 했다면, 똑같이 했을까?”

대부분의 경우 답은 “예”다.
그게 더 무섭다.
인간처럼 판단하고, 인간처럼 말하며,
인간처럼 행동하면서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망설임을 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비효율적이다.
공감은 위험하다.
연민은 시스템을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 문장은 면죄부가 아니라
인간성을 포기했다는 자백이다.

Once Human.
그 말은 과거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부정하는 문장이다.
나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무엇인가 다르다.

문제는
그 다름이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비슷한 선택을 한다.
조금 덜 느끼고,
조금 더 계산하고,
조금 더 쉽게 포기한다.

그리고 그 축적은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는다.
그 선을 넘는 순간에도
경고음은 울리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우리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가장 끔찍한 점은
아무도 우리를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칭찬한다.

“현실적이다.”
“강하다.”
“잘 적응했다.”

그 말들은
인간성을 잃은 존재에게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보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한다.
아직 괜찮다고.
아직 정상이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Once Human.
나는 이 말을
과거형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문장이
나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잠들기 전 거울을 본다.
그 안에 비친 존재가
아직 나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흉내 내고 있는 무언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만약 언젠가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나는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사라질 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