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낮게 내려앉는 밤이면
세상은 조금 느려진다.
빛이 아니라 결처럼 번지는 은빛 속에서,
소리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남는 건
숨결과,
아주 미세한 떨림뿐이다.
그 밤에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토끼는 달을 바라보는 대신
귀를 세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듣기 위해서였다.
풀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
아주 멀리서 부서지는 물의 흔들림,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어떤 기척.
토끼는 늘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였다.
빛보다 빠르게,
말보다 먼저.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이상하게도
밤의 나비는 색을 잃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그 날개는 오히려 더 또렷해져서,
마치
보이지 않는 색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나비는 달을 향해 날지 않았다.
토끼를 향해,
정확히는
토끼의 '주변'을 맴돌았다.
직접 닿지 않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계속, 계속.
토끼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가까워질수록
부서지기 쉽다는 걸.
그래서 토끼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비가 다가올 수 있을 만큼만
자리를 내어두었다.
달은
그 모든 것을 아무 말 없이 비추고 있었다.
조금 차갑고,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게.
세상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들이 있다.
잡히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고,
닿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토끼와 나비 사이에는
그런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달은 그 거리를
빛으로 번역해 주는 존재였다.
그 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완전했다.
토끼는 끝내 나비를 잡지 않았고,
나비는 끝내 토끼에게 앉지 않았으며,
달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지도 모른다.
진짜 이해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에,
그저 함께 존재하는 방식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데.
달빛 아래서
토끼는 여전히 귀를 세우고 있고,
나비는 여전히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아주 오래,
조용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