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는 계절이었다.
그럼에도 공기는 늘 젖어 있었고,
사람들은 이유 없이 목이 말랐다.
마을의 중심에는 오래된 종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치지 않아도, 가끔씩 스스로 울었다.
아주 낮고 깊은 소리로.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잊어버린 채,
그저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산 위였다.
그곳에는 작은 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에서 밀려난 듯한 장소.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기도하는 아이,
버려진 목소리,
혹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녀 자신은
그 어떤 이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절의 가장 높은 곳,
바람이 가장 먼저 닿고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
눈을 감고,
아주 조용히 숨을 쉬며,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처럼.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해가 뜨고 지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작은 소리가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너무 멀어서 닿지 않을 것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와도, 기도와도 닮아 있었다.
어느 쪽도 아니면서
둘 다인 것 같은 소리.
그 소리는 공기를 흔들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물속에 잉크가 퍼지듯,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을 아래에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알아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
잊고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지워버렸던 이름이 되살아났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노래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먹지도, 자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몸은 희미해지는데,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명뿐이었지만,
곧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누구를 부르는 거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가장 늦게 도착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래된 기억을 안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름,
끝내 부르지 못했던 마지막 한 마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혹시, 나를 부르는 건가요?"
그녀의 노래가
그 순간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눈이 열렸다.
그 눈은
누군가를 기다려온 사람의 눈이었다.
아주 오래,
지워지지 않는 시간을 건너온 눈.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래가 아닌 말을 꺼냈다.
"이제야 들었구나."
그날 이후,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마을은 예전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부르지 못한 이름을
이제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그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산 위의 절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작은 흔적 하나만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는 증거처럼.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아주 가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마치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