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를 좋아한다.
그러나 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아니, 너무 늦게 알았다.
아, 나는 해를 좋아하는구나.
그것을 느낀 순간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내가 올빼미에 가깝다는 사실을 어디서든 자랑하듯
늘어놓기를 좋아했다.
그건 나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듯해서였는지도.
남들은 잘하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라도 나만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런 기분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가 소중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밤중에 일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해를 좋아하려면,
어둠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딘가에 닿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연적으로
선제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서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빛이 널려 있을 때는 해의 소중함을 모른다.
보편의 바다에서는 특별의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그건 실은 온통 특별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이 마구 모여들어 보편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에,
특수성은 역설적으로 짓이겨지는 것이다.
먼저 자유를 잃어본 사람만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나는 해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는 이제 없다.
나의 해는 나를 벗어나, 가장 훨훨 달아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속도로.
가장 멀리서 나를 지켜보기 위해,
곧장 나를 격파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그 시선에 관통당하기 위해.
해를 상상한다.
나를 준비한다.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가장 빼어난 수를 연구한다.
그러니까 나는, 잘 살아야만 한다.
잘 산다는 것은 곧, 잘 죽어간다는 뜻이므로...
나는 삶으로 죽음을 연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