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나비 6화>>

6화. 침묵의 시간

by 윤지안


《잿빛 나비》
6화. 침묵의 시간

하루는 길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른다는 건 때로 고문 같았다.
은서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빛이 스며들지 않는 겨울 아침.
방 안은 정지된 공기처럼 무거웠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일어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

냉장고에는 남은 밥이 조금 있었다.
국은 어제 데운 것을 다시 끓였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뜨거운 김에 얼굴을 묻고 잠시 눈을 감았다.

무엇을 먹는지도, 먹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 하나를 지나고 있다는 것만이 전부였다.

**

은서는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겨울 햇살이 희미하게 창틀을 스쳤고,
그 위로 먼지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가끔 하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짧은 안부, 아무 말도 담지 않은 이모티콘.
은서는 그것마저 답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온기를 받아들이기엔,
자신이 너무 비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책상 위에 놓인 서은의 사진.
서툰 폴라로이드 속, 눈이 반쯤 감긴 채 웃고 있는 얼굴.

그 웃음이 괜히 미안했다.
‘너는 그때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지켜만 봤구나’
하는 자책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

라디오를 틀었다.
희미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

그 안에 숨듯, 은서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이따금,

서은이 공연 연습을 하며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겹쳐 들렸다.
그 기억은 따뜻했지만, 그만큼 더 아팠다.

**

낮이 지나고 밤이 되었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 어둠이 퍼졌다.

은서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 [하진]
오늘은 밥을 먹었어.



전송 버튼을 누르고,
조용히 화면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아니라 ‘내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를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

그날 밤,
은서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얀 무대.
무대 한가운데, 서은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며 웃었다.

“언니.”

그 한마디가,
은서를 눈물로 깨우게 했다.

**

아침이 왔다.
햇살이 창을 두드렸다.

은서는 이불을 걷었다.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이대로는 끝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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