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바람의 방향
《잿빛 나비》
7화. 바람의 방향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잔잔했다.
햇살은 희미하게 퍼졌고, 하늘은 뿌연 흰빛을 머금은 채 무심히 열려 있었다.
은서는 마침내 창문을 열었다.
얼마만의 바깥 공기인지 모를 미지근한 바람이,
방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그녀는 창턱에 손을 얹고, 바람을 느꼈다.
추운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닌, 어딘가 어중간한 공기.
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졌다.
**
오전 열한 시.
은서는 외투를 걸쳤다.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이 너무 낯설지 않아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몇 걸음 걷자, 익숙했던 거리들이 새로워 보였다.
상점의 간판, 담벼락의 균열, 고요한 신호등 소리.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만 이전과 달랐다.
어디로 가는 길도 아니었다.
그저 ‘나가본다’는 사실 하나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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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작은 공원 앞 벤치에 앉았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는 노인,
햇살에 눈을 찡그리는 고양이 한 마리.
그 일상의 틈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 풍경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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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 잘 나왔네.
바람 괜찮아?
은서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 응.
괜찮은 바람이야.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스스로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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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옆 서점 앞을 지나가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진열대에 놓인 책들 위로,
꽃잎 모양의 북마크들이 꽂혀 있었다.
그 중 하나에 눈이 갔다.
“그날의 바람을 아직 기억해.”
은서는 조심스럽게 북마크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책 한 권 사이에 꽂아 넣은 채 계산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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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은서는 그 책을 펼치지 않고
가만히 쥐고만 있었다.
한참 동안.
그냥, 손에 무게가 닿는 것이 좋았다.
그 손끝을 따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 아주 조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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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은서는 창문을 조금 열어둔 채 잠에 들었다.
창밖에서 스쳐가는 바람 소리.
어디론가 흐르는 기척.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안부처럼 다정하고,
머뭇거리는 말처럼 조용했다.
잠결에 그녀는 속삭였다.
“괜찮은 바람이야…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