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나비

by 윤지안


노을이 지는 숲 가장자리에서,
바람이 부드럽게 흔들어 놓은 잎사귀들 사이로
붉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선명한 붉은 날개는 저물어가는 해의 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그녀는 가녀린 몸짓으로 공중을 헤엄치듯 유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억하나요? 오래전 당신이 나에게 불어넣은 온기를."

그 소리는 바람에 묻혀 사라질 듯 아득했지만,

분명 내 귀에 닿았다.
나는 문득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어릴 적,

나는 이 숲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적이 있었다.
그때, 붉은 날개의 작은 존재가 내 앞을 맴돌며

길을 안내해 주었었다.
나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오솔길로 돌아와 있었다.

"그때 당신의 눈빛 속에 비친 나를 기억해요.

작은 손을 뻗어 나를 닿으려 했던 순간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이 저릿해졌다.
맞다. 나는 손을 뻗었고,

나비는 내 손등에 살포시 내려앉았었다.
그 따뜻한 감촉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어린 나머지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사라지는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줄곧 당신 곁을 맴돌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어요."

나비의 속삭임이 서글프게 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비를 찾지 않게 되었고,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었다.
일상의 무게 속에서,

순수했던 순간들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 이제야 그녀가 다시 나타난 걸까?

나비는 여전히 공중에서 천천히 춤을 추고 있었다.
붉은 날개 끝에 저무는 햇살이 부서졌다.
문득,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나오는 듯 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나비는 아주 천천히,

마치 오래전 그날처럼 내 손끝에 내려앉았다.

"이제야 다시 나를 보았네요."

그녀의 속삭임이 따뜻했다. 나는 나직이 대답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비는 미소 짓듯 날개를 가볍게 퍼덕였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부드러운 날갯짓과 함께,

그녀는 내 손을 떠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떠나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저 붉은 날개가 속삭이는 모든 이야기들을,

다시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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