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을 앓았다.
그 뜨겁고도 서늘한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몸 속 어디선가 피어오른 불길이 나를 삼키던 날들.
밤이면 온몸이 달아올라 이불을 걷어차다가도,
이내 서늘한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면,
다시 그리웠던 온기를 찾아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것은 단순한 열병이 아니었다.
육신이 앓는 고통보다도
마음이 먼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떠도는 동안,
나는 끝없는 꿈을 꾸었다.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흐려지고,
익숙한 얼굴들이 낯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누군가를 불렀다.
아침이 오면 희미하게 식어가는 몸을 느꼈다.
그러나 열이 내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를 태웠던 그 열이 사라지자 오히려 공허함이 찾아왔다.
마치 내 안에 불씨 하나가 남아 있었던 것만 같은데,
그것마저 꺼져버린 듯한 허전함.
나는 열병을 앓았다.
그것이 단지 육신의 병이었는지,
아니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던 또 다른 열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 번의 열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