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모치 2

서점에 올려졌던 꿈

by 윤사과

그중에서도 창작 수업은 더더욱 버거웠다. 글은 늘 어딘가 어설펐고, 비판의 말이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리포트를 제출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교수님의 호출을 받았다. 대학생이 교수와 단둘이 마주 앉는 일은 드물었기에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순간은 유난히 긴장되고 어색했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네 글은 아직 단어가 매끄럽지 않고, 군데군데 어울리지 않는 표현도 있더라.

교수님은 원고를 넘기다 말고 눈가에 잠깐 웃음을 띠었다. 곧 안경 너머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 읽히더라. 문장은 어설퍼도 남다른 시선이 있고, 감정을 건드리는 힘이 있어. 그런 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거든.


교수님은 한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작을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규격 속에 맞춰진 인간이라며 웃었다. 그러고는 내 글을 함께 교정해보고, 따로 시간을 내 글쓰기를 같이 해보자고 했다.


작가라는 막연한 꿈을 안고 한국에 왔던 나에게, 교수님의 제안은 그 꿈이 비로소 현실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첫 만남 이후, 매주 수요일 오전 열 시면 나는 교수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좁은 방에는 낡은 히터에서 올라오는 먼지 냄새와 묵은 종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창틀엔 반쯤 마른 금전수가 기대 서 있었다. 책상 옆 캐비닛 귀퉁이에는 아이가 그린 듯 서툰 크레파스 그림이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캐비닛 위에는 사인펜과 색연필, 크레파스가 층층이 쌓여 색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거운 교수실 풍경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흔적이었다. 오래된 종이와 잉크 냄새 틈새로는 은근한 비누향이 배어 있었고, 교수님의 말투에는 부드럽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교수님은 내 원고를 집게로 고정해 두고 짧게 말했다.

− 설명은 반, 장면은 두 배.

그리고 첫 과제를 내주었다.

− 한 사람의 걸음만으로 500자를 써 봐. 이를테면, ‘울었다’고 쓰지 말고 물 마시는 소리 같은 걸로 대신하는 거야.

나는 도서관 경비 아저씨의 발뒤꿈치 소리, 오래 신은 운동화의 주름, 계단참마다 멈춰 길게 내쉬는 숨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몇 주가 이어졌다. 교수님은 내 원고를 읽으며 어색한 문장 옆에 작은 점을 찍고, 붉은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여백에는 간결한 메모가 덧붙었다. 점, 밑줄과 메모가 쌓여 갔다. 어느 날 그 단조로움이 익숙해졌을 무렵, 교수님은 펜을 내려놓고 원고를 조용히 덮었다.

− 좋아졌네. 문장이 힘을 얻었어.


그동안의 점과 밑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3년을 교수님의 지도 아래에서 보냈다. 고단했지만, 그 시간 동안 내 안에는 작가로서의 뿌리가 생겼다.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기 직전, 나는 오랜만에 교수님과 약속을 잡았다. 작은 케이크와 함께 원고를 건넸다. 오래 품어온 글이니만큼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교수님은 표지를 손끝으로 한 번 쓰다듬더니 조용히 웃었다.

− 제목이 좋다. 『어깨 위의 집』. 다 읽고 서평을 써줄게.

사흘 뒤, 받은 편지함에 ‘서평’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첨부파일을 열자 첫 장에는 내 이름과 책 제목이 또렷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장엔 짧은 추신이 덧붙어 있었다.

−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이 어떻게 무게가 되고, 또 언제 그늘이 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설명을 아끼고 장면으로 밀어붙이는 태도가 특히 단단하다. 결말의 ‘하중 분산’은 윤리와 미학 사이의 균형을 어렵게, 그러나 설득력 있게 획득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글씨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 괜히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오래 붙들고 읽었네. 덕분에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고, 오랜만에 위안을 얻었어.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남 얘기 같지 않다고 했을까. 언뜻 이상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내 글이 교수님의 마음을 흔들고,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크게 울렸다. 수많은 비판을 들으며 글을 고쳐온 시간이 단숨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이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별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내 미래를 핑크빛으로 그려보았다. 더 많은 독자 앞에서 읽히고, 더 멀리 전해질 내 글을 상상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은 금세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출간 직후 며칠 동안, 나는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믿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내 책이 아직 매대에 있는지 확인했다. 책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멀찍이 바라보다가, 누군가 내 책을 집어 들기라도 하면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매대는 금세 다른 책들로 채워졌다. 내 책이 사라지는 데는 일주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원고에 매달린 2년은 마치 지우개로 문질러진 흔적처럼 희미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 입구의 배너는 바람에 흔들리며 여전히 서 있었고, 계산대 옆 북카드들도 그대로였다. 오직 내 책만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가슴에서 발끝까지 돌덩이처럼 내려앉아,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나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가벼운 글에만 환호하는 세태를 탓했고, 그 틈에서 내 글이 특별하다는 오만에 기대었다. 그래야만 누군가의 시선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팔리지 않은 책들이 작은 성벽처럼 쌓여 있었고, 그 앞에 앉아 펜을 잡아도 새 문장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허기를 달래려 전자레인지에 돌린 감자떡을 씹었지만, 조각은 목을 타고 내려가지 않았다. 막힌 식도 같았다. 내 글도, 나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듯했다. 그 사실이 더 서글펐다.




다섯 편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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