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끝에
오늘 아침,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 지역의 장마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고 발표했다. TV는 혼자 옅은 빛을 깜빡이며 그 소식을 쉼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장마는 끝났다는데, 내 몸은 여전히 눅눅하다. 늘어진 몸처럼, 마음도 축 무너져 내렸다.
고요하던 방을 깨운 건 전자레인지 속에서 터져 나온 ‘퍽’ 소리였다. 호박떡이 30초 만에 부풀다 못해 터진 것이다. 하얀 김이 문 안쪽을 가득 메우며 안이 뿌옇게 가려졌다. 떡 조각들은 사방으로 튀어 벽에 달라붙었고, 접시 위엔 속 빈 껍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나는 잠시 멈췄다. 흩어진 모양새가 내 마음 같아서였다. 아무리 긁어 담아도 예전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식어 가는 김만 바라보았다. 김이 걷히자 투명한 유리 너머로 기억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책을 출간한 첫날, 교보문고.
첫사랑을 만나는 것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광화문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동안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서자 종이 냄새와 형광등 빛이 동시에 느껴졌다. 매대마다 책들이 층층이 쌓여 반짝였다. 아이 손을 잡고 아동서 코너를 서성이는 엄마. 노트를 고르는 학생들. 신간 코너 앞에서 표지를 찍는 직장인. 사람들의 발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공간을 메우는 가운데,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내 책은 다른 책들과 다름없었지만, 매대 위의 흰 표지는 유독 내 시선을 붙잡았다. 『어깨 위의 집』. 매끈한 표면을 손끝으로 훑는 순간, 아이도 없는데 이상하게 모성애 같은 감정이 차올랐다. 아이를 품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온몸으로 번져오는 그 보드라움에 책을 끌어안고 싶어졌다. 그때, 제목을 두고 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어깨 위의 집』이라니, 무슨 뜻이야?
엄마의 물음이 끝나자, 대답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 집은 보통 기대고 쉬는 곳이잖아. 근데 어떤 가족에겐 그 집이 짐이 되기도 해. 내려놓으면 무너질까 봐, 억지로 지탱해야 하는 집. 가족 중 누가 아프면, 나머지 가족들은 벽이 되고 기둥이 되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 그래서 한쪽 어깨에만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짐을 나누고 싶었어.
엄마는 잠시 웃더니 차분히 말을 이었다.
− 현실은 쉽지 않지. 그래도 글로 그런 세상을 그려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
− 내 소설 속 인물들도 끝내 짐을 다 내려놓진 못했지만, 서로 기대며 조금은 어깨를 펼 수 있었어.
− 가족이라는 게 그렇지. 따뜻하면서도 무거워.
엄마는 말을 맺고, 처음 시드니에 갔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 사실 나도 젊었을 땐 글을 쓰고 싶었어. 그 꿈 때문에 시드니까지 간 거지. 낮엔 일하고, 밤엔 글쓰기 수업을 듣고... 그러다 네 아빠를 만났잖아. 도서관 낭독회에서 번역이 더 엉망이냐, 각색이 더 엉망이냐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웃게 됐거든.
엄마는 피식 웃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 그런데 글이란 게 참 쉽지 않더라. 영어도 완벽하지 않았고, 한국어도 멀어져 있었으니까. 내가 쓰는 문장은 늘 어정쩡했어. 반은 외국말 같고, 반은 우리말 같고. 결국 그만두고 나니까 오히려 편해지더라.
나는 잠시 엄마를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 엄마도 그랬어? 나도 그래. 영어로 쓰면 한국어 감정이 안 따라오고, 한국어로 쓰면 말이 어설퍼. 두 언어 사이에서 늘 어딘가 걸쳐 있는 느낌이야. 아귀가 잘 안 맞는 것 같아.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 그렇지? 그 언어의 벽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한 거야. 나는 결국 돌아섰지만, 너는 글을 놓지 않고 있잖아. 그래서 한국까지 가서 글을 배우려는 널 지지할 수밖에 없었어. 그 길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이기도 하니까.
나는 잠시 말을 잃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말이 단순한 위로나 격려가 아니라, 오래 묻어둔 자기 미련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 허기가 조금은 채워지는 듯했다. 엄마가 멈춘 길을 내가 다시 걷고 있었다. 길이 고단해도 더는 혼자만의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어떤 언어로 살아왔는지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호주였지만, 나는 늘 한국인이라는 바탕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린 시절, 나는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늘 일기를 두 번 썼다. 하나는 영어로, 또 하나는 서툰 한국어로. 작가의 꿈을 꾸면서는, 언어의 뿌리를 외면하고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건너와, 홀로 국문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은 낯설고도 서툴렀다.
<이모모치>는 다섯 편의 이야기로 천천히 펼쳐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