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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이영순 Jan 14. 2024

외통전화기

발신이 정지된 전화기


    어머니께서 불쑥 남은 생을 요양원에서 지내겠다고 하셨다. 


평소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며 못마땅해하시던 분이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날이 밝기를 기다려 친정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이미 주변 정리를 끝내신 듯 옷 가지가 든 가방 하나를 챙겨놓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가야지 병든 후에 가게 되면 남들이 너희들을 뭐라 하겠느냐? 혼자서 밥 끓여 먹기가 귀찮기도 하지만 걸핏하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기도 불안해서 안 되겠다. 자칫하다가 털썩 주저앉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낭패를 어찌할 것이냐?”


어느 해 여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다. 어머니는 방이 얼마나 더운지 잠을 잘 수가 없어 지붕에다 물을 다 끼얹었노라고 하셨다. 천리 밖 딸네 집 나들이는 그 잠깐의 더위를 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잠깐이면 몰라도 사위 밥 길게는 먹지 않을 거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시던 어머니는 그 후 5년여를 두 딸네 집을 오가며 피한서(避寒暑)를 해오셨다. 

딸은 출가외인이라며 발붙일 땅 한 뙈기도 몫을 주지 않고 그늘 밖으로 밀어내시더니 이제 와서는 딸은 생전 효자라 하시면서 두 딸의 그늘 아래로 은근슬쩍 들어오셨다. 1년에 두 번 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남편은 안방을 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밤중 어머니의 앓는 소리에 남편이 깰까 봐 쏜살같이 일어나 다리를 주무르고 허리를 주무르다 새벽을 맞이하곤 했지만 어머니는 그만하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 신음을 안으로 삼키기만 하시던 예전에 내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진공청소기 먼지주머니를 허리에 붙이는 파스로 알고, 이건 또 언제 사놨냐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계셨다. 엊그제 사드린 파스를 그새 다 쓰셨냐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그건 다리에 붙이고 이건 허리에 붙이라고 사놓은 줄 알았지, 하시더니 쥐고 있던 것을 홱 던져버리셨다. 통증의 강도가 얼마나 심하면 날것 그대로의 신음을 저리 토하실까 하는 연민보다는 어머니가 점점 이기적으로 저물어 간다는 야속한 마음에 나도 등을 보인 채 입을 닫아버렸다. 

늙고 병든 부모는 내 빚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낡은 서까래처럼 서걱대는 어머니를 두고 다섯 남매의 사이도 전에 없이 서걱대기 시작했다. 요양원 행을 택하신 것도 어쩌면 자식들이 뿜어내는 냉기를 견디지 못해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셔 드리면서 말로는 자주 찾아뵙겠다느니, 지내시기는 오히려 집보다 더 나을 거라느니 했지만 내심으로는 우리들 사이에 흐르고 있던 냉기를 걷어냈다는 홀가분함에 쌍수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곳이 내 집이다. 내게는 이제 그늘을 지을 만한 아무것도 없다”시는 어머니께 언제든 자식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쓰시라고 휴대전화기 한 대를 마련해 드렸다. 내 평생에 이런 물건도 다 가져본다며 보물이라도 되는 양 전화기를 손수건에 싸서 품는 어머니 뒤로 먼 날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전화비를 아껴야 한다며 단축번호를 쉽게 누르지를 못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렇게 어머니가 거는 전화보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횟수가 많았다. 그것도 잠시, 자식들한테서 걸려오는 전화 횟수가 줄어들수록 내 통장에서 자동인출되는 어머니의 전화요금 액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단 몇 분도 어머니를 위해 할애하지 못하면서 자주 찾아뵙겠다는 약속은 왜 했던지. 가까이 있는 자식은 생업을 핑계로, 천리 밖의 자식은 먼 길이 핑계가 되어 어머니와의 약속은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6개월로 밀려나면서 흐릿해져 버렸다. 


 낯선 요양원 분위기에 적응하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고 다리에 힘만 오르면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으셨던지 밥상만 한 달력을 침대 옆에 걸어두고 절기(節氣)를 짚고 계셨다. 농사를 짓고 있는 자식에게 일러줄 말은 많은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니 어머닌 아마 몇 번이고 전화를 거신 모양이었다. 어느 날 밤 오라버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노인에게 전화기가 왜 필요하냐며 당장 해지시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유인즉 어머니의 잦은 전화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오라버니의 성격을 아는 터라 그때처럼 또 천리 길을 달려 어머니께 닿았다. 오빠 성질을 뻔히 알면서 왜 그러셨냐고 하니 ‘어미가 자식 걱정돼서 전화 한 통 한 것이 그리 못할 짓이드냐. 내가 전화를 하면 얼마나 했다고. 너희들은 나이 들먹이며 어른이라고 잔소리 안 들으려 하지만 나이 먹었다고 철드는 것 아니다. 나이 수만큼 철들면 무거워서 못 걸어 다닌다’며 젖은 눈으로 먼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요양원으로 오실 때도 보이지 않으셨던 눈물이었다. 

어머니를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다른 형제들 몫까지 하루 두 번 꼬박꼬박 전화를 할 테니 이제부터는 걸려오는 전화만 받으라며 그렇잖아도 외통이었던 전화기의 발신정지를 시키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게 몹시도 충격이었던지 그 뒤부터 부쩍 말귀를 놓치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어머니는 당신이 듣고 싶은 대로 내 말을 받아들이신다. 어제 통화에서는 ‘엊그제 왔다 갔는데 뭣 하러 또 온다고 하느냐’ 시며 내가 보고 싶다는 표현을 이렇게 에둘러하셨다. 다녀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 먼 길을 또 오란 말씀인지, 짜증 섞인 말투로 그게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닌 그 말도 역시 못 알아들었는지 짧게 ‘으응’ 하시고는 요새 들어 귀가 왜 이렇게 잘 안 들리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셨다. 


발신정지된 외통전화기. 어머니의 외통전화기가 제발 불통으로 이어지는 불행은 없어야 할 텐데.

한때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였다가 이제는 베어져 외딴 그루터기로 남은 어머니의 자리에 노을빛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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